[경제경영]'한강기적'에 대한 도발적 해석 '해방후·1950년대…'

  • 입력 2002년 5월 31일 17시 48분


미 진주군 사령과 하지 준장(왼쪽)
미 진주군 사령과 하지 준장(왼쪽)
해방후·1950년대의 경제/이대근지음/544쪽 1만8000원 삼성경제연구소

이대근 교수는 사회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상아탑 속에서의 학구적 활동만을 고집해온 학자이다. 그런 이 교수가 최근 세간의 주목을 받을만한 저서를 펴냈다.

이 교수는 1980년대 이른바 사회구성체 논쟁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을 주장했던 안병직 교수나 ‘국가 독점 자본주의론’을 고집했던 박현채 교수에 대응하여 이른바 ‘주변 자본주의론’이라는 신 종속 사관을 견지한 바 있다. 그런데 금번에 이 교수 스스로 자신의 견해를 180도 바꾸어 한국 경제의 전개과정을 공업화의 진전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두어 재조명했다는 사실이 학계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본인의 과거 입장을 심지어 ‘혼란만을 초래한 이념적 편견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폄하해가며 새로운 견해를 표명하고 나선 용기에 일단 찬사를 보낸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발간한 ‘해방후·1950년대의 경제’에서 이 교수는 일제 식민지배하에서의 공업화 경험에 대한 인식의 전환 및 해방후 미군정기와 한국 전쟁기를 전후한 미국 원조가 한국 경제에 미친 영향에 대한 재평가를 촉구하면서 1960년대 이후의 한국경제의 성공적 개발 성과와의 연속성을 강조함으로써, 그간 비판 일변도로만 일관해 온 1960년대 이전 시기에 대한 학계의 분석시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이 성취한 눈부신 경제발전은 그 이전단계에서의 기반조성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차원에서 한국 경제 발전의 역사적 배경 및 전개 과정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본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일제 식민지화와 한국 전쟁을 거치며 경제구조는 왜곡되고 경제정책은 파행적으로 운용될 수 밖에 없었다는 부정적 시각을 강조해 온 기존의 입장에서 벗어나, 암울한 시기에서나마 간단없이 지속되어 온 근대화 또는 공업화의 진전이 오늘날의 성공적 경제발전의 원동력 내지 모태가 되었다는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본서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공업정책의 내용과 성과에 대해 주목하면서 이에 따른 유형의 물질적 유산, 무형의 기술적·경영적 유산 그리고 법과 제도적 유산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필자의 견해를 입증하고자 노력하였다.

한편 미군정기에서의 경제정책 및 원조가 소비재위주의 불균형적 산업구조 고착, 한국농업의 황폐화, 연고위주의 산업시설 불하와 실수요자 중심의 원조물자 배분에 따른 기업소유·지배구조의 왜곡 등을 유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한국경제를 미국경제에 철저히 예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비판해 온 종래의 평가(이대근·남북분단과 미군정 경제정책의 성격·1987년·까치출판사)를 철회하고, 미국의 원조가 경제안정과 성장에 미친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는 반면 심지어 대외 의존적 경제체질의 고착화를 국제화의 진전으로 인식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상과 같은 주장은 학계 원로급 학자가 스스로의 과거 입장을 번복하였음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였다는 파격적 용기만으로도 충분히 세간의 주목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한국경제 전개 과정에 대한 분석과 관련하여 주류를 이루어온 기존의 역사적 인식에 역행하는 가히 충격적인 대안적 발상을 제시함으로서 학계가 풀어나가야 할 큰 화두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이 교수의 공로를 평가하고 싶다.

특히 이 교수는 시대적 유행이나 현실적 욕구를 멀리한 채 별로 생색나지 않는 한국경제의 근대사를 평생 연구해온 학자로서 특히 엄청난 인내와 희생을 요구하는 자료의 발굴 및 정리면에 있어서 학계에 큰 공헌을 하여왔다. 금번 이 교수의 연구총서 또한 이러한 학구적 열정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서 추후 많은 경제학자들의 연구과정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믿는다.

물론 그렇다고 이 교수의 입장을 모두 수용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평자 스스로도 이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찬동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학계로부터 다양한 견해와 비판이 제시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에 대하여 저자 스스로도 본인이 천명한 입장에 대한 비판적 토론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으며 아울러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기 위한 추가적인 연구과제에 골몰해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차후의 연구과정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는 몇가지 논의점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첫째, 한국경제 전개과정을 단점이 아니라 연속선상에서 이해하고 평가하는 접근방법을 선택하였다는 점과 일관된 기준(공업화의 정착정도)에 의해 시대적 기여 내용을 재조명하려고 시도하였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과연 연속성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 각 시대의 공과를 정당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한 국민경제의 발전과정을 공업화의 진전도 만으로 평가하는 시도에는 무리가 없는지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둘째, 이 교수가 과거의 사회구성체 논쟁을 ‘지적 혼란만을 가중시킨 채 한국경제 발전에는 이바지 하지 못한 무익한 논쟁’이라고 스스로 비판한 용기는 높이 치하하나, 비록 당시 논쟁의 핵심적 논리 전개 방식이나 정책적 대안제시 등에 문제점이 있다 하더라도, 이들 논쟁의 궁극적 목표가 한국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제반여건을 규명함과 동시에 이를 시정해 나가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려는 건설적 비판에 초점이 맞춰질 경우 이를 무익한 논쟁으로 폄하할 필요는 없다고 보여진다.

그 이유는 어차피 경제발전과정에서 자본주의 경제가 자생적으로 정립·발전되지 못한 상태에서 식민지화 등을 겪으며 시장경제체제로 편입될 수 밖에 없었던 지구상의 대다수 개도국들의 경제여건은 왜곡과 불균형 그리고 파행적 정책운용이 불가피할 것이고, 따라서 바람직한 근대시민사회 및 자본주의 건설을 위해 시정해야 할 문제점의 내용과 그것이 초래된 역사적 원인을 규명하는 일은 꼭 필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셋째, 본서에서 제시된 자료를 어떻게 활용하고 평가하는가에 따라 이 교수의 주장과는 상반된 논리가 제시될 여지가 다소간 남아있는 것으로 사료된다. 독자와 더불어 예상되는 반론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론의 정립과 지속적인 연구성과를 기대해 본다.

끝으로 이 교수의 순수한 연구결과가 특정집단이나 개인들의 과거지사를 정당화하거나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불행이 없기를 삼가 기원한다.

이종원(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jwlee@yurim.skk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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