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월드컵]최정호/한국에서 21세기 빛이 떠오른다

  • 입력 2002년 5월 31일 19시 06분


이제 틀림없는 현실이 된 꿈의 무대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2002 FIFA 월드컵 한국 일본 대회-.

천년이 열린 새로운 세기에 온 세계를 한 자리에 모이게 한 첫 대축제. 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전 지구적인 잔치. 그것을 한국에 끌어오겠다는 것이 우리들의 간절한 ‘꿈’이었고, 그의 실패란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악몽’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와 대회 유치를 다투었던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일 두 나라가 이제는 다같이 그 악몽을 떨쳐버리고 21세기의 첫 월드컵 대회를 공동개최하는 새 역사를 기록하면서 서울 개막식을 갖게 됐다. 동북아 역사의 수백년에 걸친 두 주역이 지금은 같은 호스트 라인에 서서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의 손님들을 함께 맞고 있다.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꿈의 무대라 아니 할 수 없다.

나는 7년 전 어느 유럽 축구인이 한 말을 떠올린다.

‘유럽의 숙적 프랑스와 독일도 친구가 됐다. 유럽에서 가능한 일이 왜 아시아에선 불가능하단 말인가. 정치가 못하는 걸 스포츠는 해낼 수 있다. 조그마한 핑퐁 공이 미중 수교의 물꼬도 트지 않았느냐?’

그 말은 내 마음을 때렸다. 그렇다. 말에는 사람의 마음에 꽂히는 말이 있다. 화살이 과녁에 꽂히듯, 총알이 표적에 맞듯 말도 사람의 가슴을 맞히는 경우가 있다. 관통력을 갖는 말. 적중력을 갖는 말. 저기 잔디 구장에서 환호성을 일게 하는 ‘골 결정력’을 갖는 말….

‘공존의 세기’다, ‘상생의 세기’다 하는 종잡을 수 없는 말보다 지금 한일 두 구원의 숙적이 월드컵 대회를 공동 개최하고 있다는 사실 이상으로 ‘공존’ ‘상생’을 설명하는 어떤 다른 말이 있겠는가.

사람들이 만나도 뜻이 통하지 않으면 어울릴 수 없다. 어울리기 위해서는 뜻이 소통돼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소통)이 있는 곳에 비로소 ‘커뮤니티’(어울림)도 이뤄진다. 뜻이 통하는 말이 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열어 놓는다.

▼문화 다른 지구촌을 하나로▼

역대 최대 잔치라는 2002 한일 월드컵 대회. 세계 32개국에서 선수 대표단 보도진 등 1만3000명이 참가하고 연인원 350만명이 경기장을 찾으며 연인원 600억명(!)의 TV 시청자가 지구의 도처에서 경기를 지켜보게 된다는 월드컵.

피부빛이 다르고 역사와 문화가 다르고 바벨탑에서 흩어져 나온 사람들처럼 서로 언어가 다른 이 까무러칠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 기간 중에는 한 덩어리가 된다.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환호하고 똑같이 애석해하고 똑같이 가슴을 두근대곤 한다. 뜻이 통하고 말이 통하기 때문이다. 그 만국 공통의 언어가 ‘피버노바’ 축구공이다. 그 만국 공통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입이 이번 2002대회에 스타로 떠오를 선수들의 발이다. 피버노바를 차고 굴리고 떠올리고 때리는 선수들의 발이다. 사람들의 가슴을 때리는 말의 관통력, 적중력처럼 스타 선수들의 발은 수백 수천만명의 가슴을 동시에 때리는 말의 ‘골 결정력’을 갖는다.

이것은 거의 전쟁이다. 잔디 구장은 유혈이 나고 더러는 부상자가 들것에 실려나가는 푸르른 전쟁터다. 태평양전쟁의 영웅이 내뱉은 말처럼 “승리 이외에 어떤 대안도 없다”는 전쟁터다. 그러나 이것은 참으로 흥미진진한 평화로운 전쟁이다. 사람들은 제발 축구로 전쟁을 대신했으면 하고 평소 잠들었던 열렬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맘껏 발산시킨다.

그 화끈한 잔치판을 우리가 마련하고 세계를 끌어들이고 한국, 한국인을 보이고 ‘한류’에 흠뻑 젖게 하고 우리와 어울려 친구가 되자고 우리는 이 잔치판을 유치했다. 16강, 8강 같은 것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남미에 가서도, 유럽에 가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우리의 자랑은 그것보다도 한국에 세계를 불러들여서 우리가 세계를 보고 세계가 우리를 보게 한 데에 있다. 그것이 알짜다.

▼마침내 현실이 된 꿈의 무대▼

이것은 마침내 현실이 된 꿈의 무대이다. 15세기의 세종(世宗)대, 18세기의 영·정조(英正祖)대에 이어 300년 만에 되몰아치는 한국문화의 제3의 중흥기를 가져올 21세기 벽두를 장식하는 꿈의 무대이다. ‘대왕의 세계’였던 15세기, ‘중인의 세기’였던 18세기에 이어 ‘시민의 세기’로서 한국문화의 세 번째 르네상스를 꽃피게 할 21세기 초의 꿈의 무대이다.

통일신라 이후 수도 중심, 일극(一極) 중심의 중앙집권주의적 문화의 1000여년 전통을 벗어 젖히고 서울만이 아니라 울산 서귀포 부산 광주 대구 전주 대전 수원 인천 등 전국의 여러 지방의 도시들이 두루 세계의 눈과 귀를 모으게 하는 탈중심의 다극화의, 분권화의, 지방화의 세기를 여는 첫 잔치 무대이다. 서울이 바로 한국의 전부가 아니라, 한국의 모든 지방도시가 서울이 되는 지방화의 세기를 세계 앞에 시위하는 꿈의 무대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지방과 지방 사이, 나라와 나라 사이, 겨레와 겨레 사이, 인종과 인종 사이 등등의 장벽을 뚫고 그 사이 사이사이를 디지털통신이 뚫고 한국에서 발신하는 어림과 감동과 평화의 메시지를 인터 인터인터넷으로 전세계에 뿌리는 2002 한일월드컵.

100년 전 서울과 인천 사이, 서울과 개성 사이에 첫 전화선을 개통시켰던 한반도에 디지털 인터넷으로 전세계에 이 잔치판을 생중계하게 될 2002 한일월드컵대회가 어찌 꿈의 무대가 아니랄 수 있다는 말인가. 한반도에서 21세기의 별(스타)들이, 21세기의 빛이 떠오르고 있다. 내 글이 좀 앞서가나?

“…고독하게 시인은 골대 안에 서 있었고/그러나 심판이 호각을 불었다: 오프사이드.”(귄터 그라스 ‘밤의 경기장’ 중)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월드컵대회 전 유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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