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3 총선 때만해도 안동·구미·영천 출마자들이 앞다퉈 도청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광역과 기초단체장을 통틀어 도청이전 문제를 거론하는 후보를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해 안동의 한 후보가 “도청유치를 위한 단계적 여건을 조성하겠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힌 정도이다.
한나라당 이의근 경북도지사후보도 도청이전 문제에 대해선 ‘불개입’으로 일관하고 있다. 공약목록에 일절 언급이 없다. 당선되면 마지막 임기여서 소신대로 추진할 수 있음에도, 별 의욕을 보이지 않고 있다.
좋게 보면 2기 공약을 지키지 못한 데 따른 ‘자숙’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 후보는 1998년 6·4 지방선거 당시 “임기내 이전 후보지를 결정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끝내 이를 지키지 못했다.
그 바람에 이 후보는 요즘 각종 토론회나 대담에 참석해 공약 부도에 대한 해명에 바쁘다. 한 대담에서 이 후보는 “이유야 어떻든 도청이전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도민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대(對)도민 사과도 불사하며 이 후보가 물러선 배경에는 본인이 오히려 시·도 통합 필요성에 기울어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후보는 “대구시와 경북도는 동일한 생활권과 경제권임에도 개발계획이 분리 수립됨으로써 개발과 투자의 연계성이 결여되고 도로, 환경 등 광역행정 수요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며 시·도분리에 따른 문제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후보는 시·도 통합 문제도 공약목록에 올리지 않아 ‘약한 모습’을 다시 보였다. 실제 시·도 통합이 호락호락하게 추진될 사안은 아니다. 양측 시·도민의 의견조사를 위한 주민투표, 시·도지사 합의, 시·도의회 동의, 국회 법률제정 등 넘어야할 절차가 첩첩산중이다. 특히 대구시의회와 시 공무원, 시 교육공무원 중심으로 한 대구시측의 거부감도 만만찮은 것으로 감지되고 있다. 중앙정부도 ‘덩치 큰’ 지역정치권이 탄생하는 데 대해 내심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에대해 학계의 한 전문가는 “이 후보의 ‘침묵’은 앞으로도 뒤로도 쉽게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의 두터운 벽 속에서 취한 고육책일 수 있다”면서 “그러나 4년 도정의 타륜을 잡으려는 선장이 항해의 좌표를 제시못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소속 조영건 후보는 공약으로 “경북과 대구를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라고 밝혀 이 후보와 대비되는 저돌성을 보였다.
권혁식기자 kwonhs@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