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굽힐 수가 없어요, 무릎을.”
“아파도 상체를 뒤로 젖히면 안 돼요. 허리에 무리가 온다고요. 팔을 약간 내리고, 그렇죠, 힘을 주지 말고, 앞으로 나가려고 하지 말고, 그래요, 자기 몸무게에 맡기고 자연스럽게, 좋아요.”
“아파요!”
“다리를 펴면 안 된다니까요.”
“아파요! 이번에는 오른다리!”
“…역시 바깥쪽 무릎인가요?”
“같은데요.”
“…내리막길이 다 끝났어요.”
“저건 뭐죠?”
“회수 차량이에요.”
“포기한 사람들을 회수하는 건가 보죠. 마치 나하고 같이 뛰는 것처럼 뒤따라오네요.”
“교통 규제가 해제될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요.”
“…타라고 채근하는 것 같군요.”
“봐요, 다들 타잖아요. 이제 곧 20킬로미터 지점이니까 중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 거예요.”
큐큐 파파 큐큐 파파 이제 더는 뛸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왼다리를 끌면서 오른다리 하나로 뛰었으니까 큐큐 파파 오른무릎도 큐큐 파파 아픔이 아픔으로 되풀이되어 아픔의 파도가 다리를 내밀 때마다 높아져 큐큐 파파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큐큐 파파 쓰기 위해서? 뛰는 사람의 내면을 묘사하기 위해서? 하지만 톱 러너들은 외측 측부 인대 따위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사토 코치도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큐큐 파파 이번에는 이쯤에서 포기하고 허벅지근육을 강화한 후에 다시 한 번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뛰는 것은 내 일도 아니고 취미도 아니다 큐큐 파파 다리가 아프면 아들을 안을 수도 업을 수도 없고 큐큐 파파워드 프로세서 앞에 오랜 시간 앉아 있을 수도 없다 큐큐 파파 저 버스에 올라타는 편이 좋겠지 큐큐 파파 큐큐 파파 나는 무의미함을 맛보기 위해서 뛰는 것이 아니다 큐큐 파파 나는 뛰는 것 자체에 의미를 찾고 있는 것이다 무의미한 아픔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려 하지 말고 이 무의미한 아픔을 거역함으로써 의미를 획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큐큐 파파확신이 아닌 예감이지만 큐큐 파파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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