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는 1940년대 일간지에 작품을 투고,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고 시집을 엮어보기도 했던 왕년의 ‘문학청년’.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30여년간 시 쓰기를 중단해야 했다.
“81년 내 환갑 잔칫날이었어요. 밤늦은 시간 손님들이 모두 떠난 텅 빈 연회석을 보다가 문득 떠오르는 감회가 있어 30여년만에 처음으로 ‘고종명(考終命)’이라는 시를 썼죠. 몇 번을 다시 읽어봐도 마음에 전해져오는 울림이 있더군요. 자신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 후 다시 틈틈이 시를 쓰게 됐습니다.”
시인이 되겠다기보다는 ‘그동안 써왔던 시에 대한 마지막 심판의 절차라 생각하고’ 응모했던 신춘문예에서 당선되자 그에게 ‘만년에 새로 시작할 일거리’가 생겨났다. 그 후 12년, 꾸준한 시작(詩作)의 결과는 한 권의 시집으로 묶였다.
“56년만에 낸 책입니다. 감개무량하고 두려운 생각뿐이지요. 자식들에게 큰 유산은 남겨 주지 못하나 깨끗하게 살기 위해 애쓴 아버지로서 일상의 기록을 물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 시와 시집 말이지요.”
신춘문예 당선 소감에서 ‘큰 시 세계의 나이 많은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라고 말했던 최씨는 “나이가 많아 감수성이 부족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허허 웃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