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프랑스 파리의 축구시합 관람석에서 키가 작아 주위사람들로부터 ‘프티 동’이라고 불리던 17살짜리 중국 소년이 뚫어질 듯이 시합을 보고 있었다.
그는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근공검학(勤工儉學)’제도로 스촨(四川)성의 농촌에서 프랑스로 건너왔다. 지주의 장남이었지만 노는데 쓸 돈은 없었다. 하지만 꼭 보고 싶었다. 그는 코트를 전당포에 잡혀 입장권을 입수하는 기지는 갖고 있었다.
당시 파리 남쪽의 동네 구두공장에서 한 시간에 1프랑 정도를 받으며 하루에 몇시간씩 구두창을 도려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혁명운동에 몸을 던졌고, 귀국후 우여곡절을 거쳐 최고지도자가 된 덩샤오핑(鄧小平)의 젊은 시절이었다.
그가 보았던 대회를 프랑스기자가 쓴 덩사샤오핑 전기에서는 월드컵이라고 했지만 분명히 틀린다. 어떤 중국작가는 올림픽이라고 했지만 그것도 이상하다. 주일 프랑스대사관에 문의해 봤더니 22년에 프랑스팀은 벨기에 등과 국제시합을 했다고 한다.
머리를 사용하는 브릿지와 몸을 단련하는 수영, 여기에 축구시합 관전은 평생 계속됐던 그의 취미였다.
3번의 실각과 부활을 반복했던 정치인생. 주요한 대목마다 축구와 관련을 맺고 있다. 10년에 걸친 문화대혁명은 76년에 4인방 체포로 막을 내렸지만 그의 부활은 다음해가 돼서야 실현됐다.
7월말 드디어 시민들에게 모습을 보일 때가 왔다. 무엇보다도 서민적이며 인기를 끌 수 있는 장소, 중국과 홍콩의 축구시합이 열리던 베이징의 궁런(工人·노동자)경기장이었다. 귀빈석에 나타난 작달만한 그의 모습을 8만 관중은 놓치지 않았다.
끊이지 않는 박수와 환성…. 개혁과 개방의 시대를 열었던 절대적인 성원이 지금 월드컵에 첫 출전한 중국팀의 등을 밀어 주고 있다.
가토 치히로 편집위원
정리〓심규선 도쿄특파원 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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