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제작비 80억 '예스터데이', 산만한 스토리 맹숭맹숭

  • 입력 2002년 6월 11일 17시 23분


정윤수 감독의 데뷔작인 ‘예스터데이’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는 SF 영화다.

기획 2년, 세트 제작 5개월, 촬영에 9개월을 쏟은 ‘예스터데이’는 암울한 이미지의 세련된 영상과 수준급의 특수효과, 1만발이 넘는 탄환과 100여점에 이르는 총기류를 동원한 액션 화면이 내세울 만한 볼거리다. 여기에 파리같이 생긴 정탐용 곤충로봇, 시체의 치아에 갖다대면 즉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치아스캐너, 화상통화가 가능한 카드형 인터넷폰 등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미래형 소품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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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총 8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예스터데이’의 결정적인 흠은 시나리오다. 이 문제는 이미 평가받은 여느 ‘한국형 블록버스터’와 다르지 않다. 올해초 개봉한 ‘2009 로스트 메모리즈’(80억원)나 지난해 ‘무사’(60억원) 등은 영상이나 촬영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비교해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줄거리 구조가 탄탄하지 못한 탓에 알맹이없는 영화가 되고 말았다.

‘예스터데이’도 이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관객들은 이 영화의 주제는커녕 줄거리를 이해하기에도 벅차다.

2020년 통일 한국의 특수수사대 수석팀장 석(김승우)과 여성 요원 매이(김선아)는 은퇴한 과학자들을 타깃으로 벌어지는 연쇄 살인사건 수사를 맡는다. 1년 후. 경찰청장이 납치되고 청장의 딸인 범죄심리분석관 희수(김윤진)는 특수수사대에 합류해 아버지를 찾아나선다. 석은 희수가 자신처럼 똑같이 만성 두통을 앓고 있으며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한다.

두 사람은 연쇄살인사건 및 납치사건의 범인인 골리앗(최민수)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30년전 국방부가 주도한 비밀실험을 알게 된다. 과학자들은 아이들의 기억을 지우고 DNA를 조작했는데 이때 골리앗에게는 후천적 공격성과 폭력성이 심어진 것. 석과 희수도 이 실험의 희생자다. 여기에 골리앗의 DNA를 복제한 ‘다윗’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석과 골리앗의 뿌리깊은 관계가 드러난다. 감독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고와 미래 과학 기술의 위험, 인간 정체성의 혼란을 이야기하고자 한듯하다. 그러나 그 메시지 중 어느 것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마치 내레이션을 듣는 듯한, 무겁게 가라앉은 주인공들의 말투도 부자연스럽다.

인상적인 폭발 장면과 영상만으로 만족하기에는, 퍽 괜찮은 SF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소재와 엄청난 물량 공세가 아깝다. 15세 이상. 13일 개봉.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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