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하이닉스가 정치권 노리개인가

  • 입력 2002년 6월 11일 18시 20분


정치권의 경제 흔들기가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민주당 박병윤(朴炳潤) 정책위의장이 하이닉스반도체를 살리기 위해 삼성전자의 감산을 요청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무리 선거를 앞두고 ‘표’가 중요하다고 해도 지나쳤다.

하이닉스가 살아남으려면 삼성전자가 생산을 줄여 반도체가격이 올라야 한다는 것이 박 의장의 논리이다. 독자생존론을 주장하고 있는 쪽에서는 환영할지 모르겠으나 특정기업을 살리기 위해 경쟁기업의 생산량까지 조절하겠다는 발상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박 의장의 발언은 하이닉스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전혀 실현성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특정제품의 생산량은 기업이 알아서 결정할 일이다. 비록 반도체 시장이 과점상태라고 하더라도 정치인이 나서서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은 아니다. 당사자인 삼성전자도 감산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하고 있지 않은가.

만약 과점시장이 문제라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법에 따라 처리할 일이다. 특정 정당이 나서서 반도체 가격을 조절한다면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국내외 반도체 수요업체들이 반도체 생산업체들을 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하지 않겠는가.

박 의장은 또 금융감독위원회와 채권단에 하이닉스반도체를 연말까지 해외매각하지 말도록 요청했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이 회사 노조가 독자생존을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겠다고 선언하자 민주 한나라 두 당의 경기도지사 후보들이 동조하고 나선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매각 여부는 결코 그런 식으로 결정되면 안 된다.

정치권과 지방선거 후보들이 당장 ‘표 욕심’에 집착한 나머지 하이닉스 처리 문제를 선거전에 이용하는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이닉스 문제는 정치논리를 배제하고 경제논리로 풀어야 한다. 나중에 책임지지 않을 정치권이 개입하면 문제가 더 꼬이게 될 뿐이다. 하이닉스는 정치권의 노리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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