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협의차 오랜만에 서울에 돌아와 보니 달라진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늘어선 고층 건물과 고급 대형차들이 넘쳐흐르는 서울의 거리는 워싱턴DC에서 온 ‘촌놈’을 완전히 주눅들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반미 감정이었다. 학창 시절이던 1980년대의 반미 감정이 이념적이며 추상적이었던 것에 반해 이번에 부닥친 반미 감정은 아주 즉물적이며 도발적이었다.
주한미군 지위에 대한 협상에서부터 시작해 미군기지의 독극물 한강 방류를 거쳐 동계 올림픽의 오노 사건에서 절정에 다다른 우리 국민의 반미 감정은 차기 전투기 및 덕수궁 자리의 주한 미국 대사관 직원 아파트건설 문제까지 얽혀 수그러질 줄 몰랐다. 그러던 차에 한미 양국이 월드컵 16강 진출을 놓고 1라운드에서 격돌하게 되자, 사정을 잘 아는 미국인들은 차라리 미국이 한국에 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반세기의 염원이 담긴 한국의 16강 진출을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인 미국이 막아 가뜩이나 심각한 반미 감정에 불을 댕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반미 감정의 근원은 오해다. 이제 10년이 넘는 미국 생활을 하면서도 아직 동료들이 해오는 일이 흡족하지 않으면 이 친구들이 유색인과 같이 일하기 싫다는 것을 이렇게 표시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문제점을 지적하면 다시는 그런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 합리적인 문제점 지적에 대해서는 토를 달지 않는 것이 그들이다. 미국인들에게 알아서 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온갖 인종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 어떤 보편적인 행동양식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계약서는 거의 책 한 권 분량이 된다.
한편 10여년 전 한국을 떠난 필자가 가끔씩 마주치는 한국 생활도 서툴기 그지없다. 때로는 사태 파악을 못하고 썰렁한 소리를 내뱉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핀잔을 듣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오해도 받는다. 작금의 반미 감정도 바로 이런 데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몰이해를 과감히 인정하고 바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피로 맺은 우방인 한미 양국 관계에, 반미 감정은 일부 소수 의견일 뿐이라고 얼버무린다면 이는 너무 안일한 사태인식이다.
다행히 한국의 대 포르투갈 전 승리로 한미 양국이 16강에 나란히 진출했다. 미국의 유수 언론 매체들도 미국이 처음으로 한국에 빚을 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월드컵 16강 동반 진출을 계기로 그동안 미국에 가졌던 서운한 감정을 떨쳐버리고 더욱 발전된 한미 관계의 장을 열었으면 한다. 코엑스 광장에서 들었던 연호가 진정한 어깨동무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박해찬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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