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초반 홍업씨 연루 단서 못잡아 애태워

  • 입력 2002년 6월 19일 18시 41분


19일 이명재 검찰총장이 대검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
19일 이명재 검찰총장이 대검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
“길고 지루한 터널을 달리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달 검찰 관계자는 김홍업(金弘業) 아태평화재단 부이사장 수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풀릴 듯 풀릴 듯하다가 풀리지 않는다는 얘기였다.

‘이용호(李容湖) 게이트’를 재수사했던 차정일(車正一) 특별검사팀이 3월25일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홍업씨의 고교 동창인 김성환(金盛煥)씨의 계좌추적 결과를 검찰에 넘길 때만 해도 수사는 순조로울 것처럼 보였다.

김성환씨의 차명계좌에서 나온 돈이 아태재단 신축 건물 공사비와 직원 퇴직금으로 사용되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특검 수사에서 상당 부분 드러났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를 토대로 치밀한 계좌추적을 계속해 수사 착수 10여일 만에 김성환씨의 알선수재 혐의를 확인했고 곧 이어 김씨가 34개 차명계좌를 통해 200억원대의 자금을 관리한 사실을 밝혀냈다.

지난달 4일 김씨를 시작으로 이거성(李巨聖) 유진걸(柳進杰)씨까지 홍업씨의 ‘측근 3인방’은 각종 청탁과 함께 거액을 받은 혐의로 줄줄이 구속됐다. 홍업씨가 김병호(金秉浩) 전 아태재단 행정실장 등을 통해 28억원을 세탁한 사실도 드러났다.

하지만 홍업씨가 비리에 직접 연루된 단서는 쉽게 포착되지 않았다. 측근들이 모두 “내가 한 일”이라며 홍업씨와의 연관성을 전면 부인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검찰에서 조사를 받던 유진걸씨가 쓰러져 입원하고 청와대 관계자가 검찰의 강압수사 여부를 조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수사는 더욱 힘들게 진행됐다.

한 검찰 관계자는 “현직 대통령 아들에 대한 수사가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 몰랐다”며 “아마 대검이 아닌 일선 검찰에서 맡았다면 중도에 포기했을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홍업씨 측근들에 대해 집요한 설득과 압박을 반복했다. “부정 축재한 재산을 조사하겠다”거나 “법정 최고형을 구형하겠다”며 이들을 압박했다.

그 결과 최근에야 홍업씨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했다. 홍업씨의 실명계좌에 의심스러운 돈 수억원이 입금된 정황도 포착했다.

이를 토대로 검찰은 17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19일 홍업씨를 소환하기로 했다고 발표했고 예정대로 홍업씨는 이날 오후 검찰에 출두했다. 수사 착수 83일 만의 일이었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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