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뿐이 아니었다. 관객 누구나 열광하고 있었다. 18일 밤이었지만 그곳은 대전 월드컵 경기장도, 광화문 네거리도 아니었다. 1년만에 열리는 부천 필의 말러 교향곡 시리즈가 재개되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이 그곳이었다.
2600석의 객석 중 자리가 찬 좌석은 잘 봐주어야 1000여석에 불과했다. 그러나 100명 가까운 부천필 단원들은 개인기나 앙상블 어느 면에서나 경탄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5번교향곡 1악장 서두의 트럼펫 서주와 2,5악장 코랄(찬송가풍 선율)을 소리높여 연주한 트럼페터 이응우 (우리가 안정환과 설기현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 처럼 이런 이름도 언급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의 기량은 어떤 해외 유명악단의 음반을 듣는 것 보다 출중했다. 물론 연주의 전체적 면모에 있어서 ‘이탈리아’ 1급 악단의 정교함을 능가했다고 단언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웬만한 미국악단, 예를 들어 요엘 레비가 지휘하는 애틀랜타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반보다는 월등히 정밀하고 심혼이 실린 연주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음반으로 발매해달라고 소리 높여 외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근 김대중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재계 총수들과 회의를 갖고 월드컵 8강 진출에 따른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분명 월드컵에서의 호성적은 해외에서의 한국 인지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세계적 오케스트라 하나가 세계 문화계 지성들과 지식계 스타들의 호의적 시각으로 이어지는 후광효과 또한 이에 못지 않다.
한국축구가 선진축구로 한단계 업그레이드되는데 들인 비용은 대략 300억원이라는 분석이 있다. 이는 경기장 하나를 짓는데만 2000∼4000억원대가 든 월드컵 준비비용은 포함시키지 않은 숫자다. 한국 지방 교향악단 하나의 연간 운영비는 대략 10∼30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부천 필의 연주가 끝난 뒤 거듭되는 객석의 환호 속에서 지휘자 임헌정은 무언가 말하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객석은 ‘축구 스코어를 알려 주겠지’라는 기대로 일순 조용해졌다. 그러나 당시 1-0으로 한국이 뒤지고 있던 상황 때문이었는지 임헌정은 “빨리 댁으로 가셔야죠”라고 짧게 한마디 했다. 왁자하게 웃음이 터졌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