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수/룰 지킨 당선자만 勝者다

  • 입력 2002년 6월 20일 18시 41분


2002한일월드컵에서 한국팀의 새로운 신화창조로 온 세계가 놀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찍이 체험해보지 못했던 국민적 통합이 작은 축구공 하나, 한 번의 동점골, 한 번의 결승골에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온통 축구 열기에 정신을 쏟고 있는 사이 13일 지방선거가 끝났다. 그리고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한마디로 민주당 참패, 한나라당 압승, 자민련 쇠퇴였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48%에 이르는 부진한 투표율이었다. 당선자와 낙선자를 골라 세울 수는 있었지만 유권자의 절반도 참여하지 않은 반쪽짜리 선거 결과였다. 가정해서 말하자면 이 결과는 축구 16강 탈락보다 더 심각한 사태가 아닐까 염려된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이런 풍토 속에서 제대로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선거사범 신속히 수사를▼

연일 작열하는 축구 열기 속에서 지방선거에 대한 실질적인 마무리 작업이 대충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선거의 실질적인 마무리는 검찰과 법원의 선거사범 처리를 통해 완료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약간의 변화 조짐은 감지되었지만 고질적인 지역감정의 뿌리는 깊고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품살포와 흑색선전도 예나 다름없었다. 월드컵으로 우리가 시선을 돌린 사이 불법 선거사범들이 꼬리를 치고 활보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시도지사 당선자 16명 중 6명이 수사를 받게 됐으니 무려 37%가 깨끗하지 못한 축하인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선거풍토에서 관권선거의 병폐는 지방화 이후 감소된 듯하지만, 아직도 지역정서와 연고주의에 의한 투표 성향이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금권 타락선거와 지역감정 이용, 흑색선전 등 각양의 불법선거 행태는 더욱 고도화 지능화됐다. 이러한 타락상의 배후에는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의식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불법과 부정을 통해 당선된 사람은 공직의 권위와 도덕성을 무너뜨리고 빗나간 특권의식과 이권챙기기, 내 사람 봐주고 심기 등 일탈을 감행할 개연성이 높다. 이것이 입으로는 공복임을 침이 마르도록 외치면서도 삶의 양태와 의식은 여전히 구태의연함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1세기 들어 처음 치른 지방선거부터 마무리를 잘 해야 8월 국회의원 재·보선과 12월 대선도 공정하고 깨끗하게 치를 수 있을 것이다. 새 천년 들어 우리를 이끌었던 지도이념은 ‘새로워짐’이었다. 선거문화도 이제 새로워져야 할 때다. 깨끗한 정치, 부패없는 권력은 바로 공명 선거문화의 정착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공명 선거문화를 정착시켜 이 땅에 성숙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면 선거사범에 대한 엄정하고 신속한 사법처리가 전제돼야 한다. 금품살포, 지역감정 조장, 흑색선전, 무고성 짙은 폭로 비방행위로 인해 왜곡되었던 국민의 신성한 표심을 바로잡는 길은 사법처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만큼 엄정하고 신속한 절차를 거쳐 공명선거 정착의 문호를 열어 주리라 기대한다. 지금까지 선거사범에 대한 사법처리는 당사자들의 지연술에 휘말려 방만하게 이끌려 간다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2000년 5월에 실시된 총선의 선거사범 일부가 2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처리가 지연되고 해당 의원이 국정에 관여하고 있는 현상은 국민 시각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수사가 마무리된 후 기소된 선거사범에 대해서는 법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신속하게 절차가 마무리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편파성 시비 없게 공정히▼

공명선거 정착과 법질서 확립을 위해서 검찰은 물론 법원도 확고한 의지를 갖고 선거 결과의 실질적인 마무리 작업에 임해야 할 것이다. 불법이 입증되는 한 소속 정당, 관록, 지위, 공적을 불문하고 가혹하리만큼 엄정하게 사건을 처리해야 새로운 선거문화의 기틀이 정착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요행을 바라는 당선자들에게 규칙을 따른 경기자만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음을 확고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다만 법원과 검찰 모두 편파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도록 유의했으면 한다. 자칫 편파성 시비에 휘말리면 공명선거 풍토 조성과 법의 권위 두 가지를 다 잃게 될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김일수 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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