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에서 사람 이름으로 가장 많이 불려지는 것은 아마도 ‘무함마드’일 것이다. 이슬람교를 믿는 13억 교도들이 나라에 상관없이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를 존경하고 따른다는 의미에서 자기 이름에 넣기 때문이다. 무함마드는 마호메트의 영어식 표기이다.
일부 서구학자들에는 인류 역사를 통해 가장 깊은 감동과 영향을 끼친 인물로 마호메트를 드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아다시피, 이슬람이란 종교를 완성한 마지막 인간 예언자이다.
그는 570년경 사우디 아라비아의 메카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40세 되던 해 유일신(알라)의 계시를 받았다. 그것이 코란이다. 그의 종교적 성공과 사람을 묶어두는 매력의 원천은 정직과 관용, 종교적 열정과 온화함의 조화였다. 동시에 그는 모든 어려움을 앞장 서 막아내는 불굴의 정치 지도자였다. 대부분 종교 창시자들이 자신의 근거지를 떠나 새로운 세상에서 그 뜻을 펼쳤지만, 마호메트만은 박해의 진원지였던 그의 고향 메카를 설득과 용서를 통해 재정복했다. 그리하여 메카는 마호메트를 보호해 주던 가장 든든한 지지 기반이 되었다.
632년 6월. 이슬람을 완성한 마호메트는 사랑하는 아내 아이샤의 팔베개를 베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아무런 유산을 남기지 않았다. 후계자도 정하지 않았다. 슬하에는 파티마라는 딸 하나가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하고도 평범한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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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평가는 너무나 다양하고 혼란스럽다. 최고의 극찬으로 포장된 호교론적 수사에서부터 혐오에 가까운 저주 사이를 수시로 오간다. 그는 간질병 환자나 사회선동가 나아가서는 일부다처 때문에 몰몬교도의 원형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기독교 서구 사회에서 예수를 신의 아들이 아닌 인간 예언자로 추앙하는 이슬람을 용서할 수가 없었고, 마호메트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기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서구학자들 사이에 객관적으로 재평가하려는 지적인 움직임이 본격화 되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서구 사회에서 그의 생애를 비교적 객관적인 관점에서 다루고자 했던 대표적인 저자들은 몽고메리 와트, 맥심 로딘슨, 게오르규 등이다. 그 중 가장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마호메트의 인간적인 모습을 잘 그려내었다고 평가받는 작품이 바로 ‘25시’로 유명한 게오르규의 ‘마호메트 평전’이다.
이 책에서 게오르규는 그의 작품 ‘25시’로 표상된 혼란의 시대에 새로운 구원의 가능성을 마호메트를 통해 제시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리스 정교회 신부 출신의 소설가로서 게오르규가 펼쳐내는 해박한 종교적 지식과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두는 아랍 문화의 독특한 묘사는 이 책만이 갖는 매력이다. 70년대에 번역돼 나왔다가 절판됐는데, 최근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재출간된 듯 하다.
게오르규의 이슬람과 마호메트에 대한 시선은 종전의 서구학자들에 비하면 말할 수 없이 따뜻하다. 하지만 결국 기독교적 인식세계와 아랍문화를 신비로 포장하는 그의 입장이 군데군데 많이 묻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예를 들면, 사막에서 일신교가 생길 수밖에 없는 종교 생태학적 입장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라던가, 이슬람 세계에 산재하는 신뢰성 낮은 자료들의 무분별한 인용 등이다. 그리고 이 책은 출판 당시인 1960년대만 하더라도 놀랍고도 객관적인 마호메트에 대한 묘사로 후한 평가를 받았지만, 이미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객관적인 저술이 봇물을 이루고, 마호메트에 대한 재평가가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보면 다소 진부한 느낌도 든다.
이 희 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한국이슬람학회 회장lee200@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