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아직도 ‘그 나라 일은 역시 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국 연구자가 오히려 그 나라 출신 연구자가 빠져 있는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어서, 그 나라의 참모습을 확실히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인정해야 될 것 같다.
이 번에 소개하는 책의 저자는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 교수인 텟사 모리스 스즈키이다. ‘스즈키’라는 성은 배우자의 성이다. 그녀는 영국 태생인데 대처 정권의 배외주의에 진절머리가 난 나머지 ‘다문화주의(多文化主義)’의 나라 오스트레일리아로 건너간 연구자이다. 그녀는 일본에도 자주 가서 훌륭한 저서와 논문을 발표해, 일본의 지식인 사회에 지적 자극을 주고 있다. 전공은 일본경제사이지만, 요즘은 근대 국민국가의 폭력과 마이너리티에 관한 역사 분석을 주 테마로 하고 있다.
이 책은 최근 일본에 만연하고 있는 국수주의적인 논조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것이다. 저자는 현 도쿄도지사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의 발언을 주목하고 있다. 이시하라는 2000년 4월 자위대 기념식전에 출석해 “요즘 도쿄에 불법 침입한 많은 ‘삼국인(三國人)’들이 범죄를 일으킨다.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대단히 크다”는 망언을 해 큰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 ‘삼국인’이라는 말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구식민지 출신 사람들을 가리키는 차별어이다. 이시하라는 이 말을 역사 속에서 파내, 불법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것처럼 선동적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글로벌리제이션의 합창이 울리는 이 시대에 왜 이 같은 배외적인 내셔널리즘이 출현하는 것일까.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글로벌리제이션에 의해 생긴 긴장과 모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지적한다. 진작부터 글로버리제이션에 위협을 느낀 내셔널리스트들이 이런 불투명한 불안에 ‘외국인’, ‘이민’이라는 가시적인 얼굴을 오려 붙였던 것이다.
물론 텟사 모리스 스즈키는 글로벌리제이션의 편에 서서 내셔널리즘을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약육강식의 자본의 논리를 구사하고 있는 글로벌리제이션도 국가의 강대화를 갈망하며, 복고적 도덕으로 치장하는 내셔널리스트도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무섭게 위협하고 있다”고 말한다. ‘도덕적으로 공허한 신자유주의’와 ‘도덕으로 분장한 허무적 내셔널리즘’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를 보완하고 받쳐 주는 관계에 있는, 이 곤란한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지 타파하고자 하는 것이 저자의 절실한 의도이다.
얼마 전에 프랑스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민의 배제를 공약으로 내건 극우 정치가가 결선 투표에까지 올라갔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역시 극우 정당이 연립 정권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극우 세력은, 어느 나라에서건, 이민을 배제하고 ‘건전한 국민’의 부활을 외치는 등의 비슷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 사실은 내셔널리즘을 지탱하는 구조가 실은 매우 글로벌한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보통 내셔널한 것을 그 나라에 독특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따라서 배외적인 내셔널리즘 비판은 역시 국제적인 다양한 아이덴티티 집단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는 저자의 결론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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