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만들기Ⅰ- 바늘구멍?
일찍이 프랑스 감독 로베르 브레송은 1975년에 쓴 ‘시네마토그라프에 대한 노트’에서 “분명하고 정확한 어떤 것을 가져야 관객의 부주의한 눈과 귀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많은 이야기와 장면들 가운데 필요없는 것들을 제거하는 과정이 영화 제작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관객의 눈과 귀, 나아가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수백명의 공동 작업, 그것이 영화인 셈이다.
실제로 한편의 영화가 관객을 만나기까지는 우여곡절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더 정확하게 말해 우여곡절을 겪은 대부분의 기획이나 시나리오가 관객과 만나기도 전에 사라져버린다. 제작비가 없어서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 요즘 충무로처럼 캐스팅을 못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시나리오도 허다하다. 심지어 프린트를 만들어놓고 극장을 잡지 못해서 관객과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잘 아는 것처럼 영화 제작은 세가지 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프리 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 등이 그것인데 대부분의 변수와 어려움은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 집중돼 있다. 모든 것이 세팅된 다음의 우여곡절은 대부분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프리 프로덕션은 크랭크 인(촬영 시작) 이전의 모든 단계를 일컫는다. 기획, 시나리오 작업, 시장조사, 제작비 조성, 스태프 구성, 배우 캐스팅, 각종 촬영 장비 구비 등 일체의 과정이 포함된다. 가장 길고 지루하며 영화로 빛을 보게 될 확률이 낮은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수없이 많은 기획과 시놉시스가 나타났다 사라지고, 거기서 살아남은 ‘물건’도 시나리오 과정에서 다시 걸러진다. 또 수차례에 걸친 수정 작업을 거친 후에도 투자자가 없어서 혹은 배우가 없어서, 숙명의 크랭크 인에 오르지 못한 작품도 부지기수다. 한국에만 1000여개의 영화사가 있고 영화사당 평균 3개의 아이템이 있다고 가정할 때 3000여편의 기획이 떠돌아다니는 셈이다. 이 가운데 관객이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은 불과 60여편에 불과하다.
#영화만들기Ⅱ- 미친 감독, 미친 짓?
어렵게 빛을 본 정윤수 감독의 ‘예스터데이’의 경우만 해도 1000일이라는 긴 시간이 걸려 극장에 간판을 걸게 되었다. 이 작품은 처음에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다룬 심리학자의 리포트를 모티브로 한 미스터리 스릴러인 ‘비밀’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중간에 박기형 감독의 ‘비밀’이 나와 제목이 ‘베일’로, 다시 ‘예스터데이’로 바뀌었다. 이때가 1999년 5월의 일이고 그로부터 1년6개월 뒤인 2000년 11월에야 여배우 김윤진이 캐스팅됐다. 이 작품이 크랭크 인된 것은 7개월 뒤인 2001년 6월9일이었고, 촬영기간만 9개월, 촬영횟수 112회를 거쳐 1년 뒤에야 완성된 프린트가 나오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애초 저예산 영화로 기획됐던 이 영화는 무려 80억원짜리 영화로 부풀려졌다.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영화를 힘들게 찍었다고 해서 흥행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제작비 증액을 둘러싼 투자자들과의 줄다리기는 이제 일상사가 되어버렸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의 경우도 2배 가까이 늘어났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애초 기획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났다.
미국 독립영화 제작의 대모인 크리스틴 바숑은 그의 저서 ‘슈팅 투 킬’에서 세가지 타입의 예산 기획서를 짤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만큼 영화적 변수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하라는 말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타이타닉’에 3억달러(약 360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투여했다. 제작사인 20세기 폭스사는 이 ‘미친 감독’의 재촬영을 통한 추가 제작비 부담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수천만달러를 들인 초대형 배 세트를 후반 작업 중 폭파시켰다.
#영화만들기Ⅲ- 영화 속 영화만들기
로버트 앨트먼의 ‘플레이어’나 마이크 피기스의 ‘호텔’, 페르난도 트루에바의 ‘꿈속의 여인’, 코엔 형제의 ‘바톤 핑크’, 여균동의 ‘죽이는 이야기’ 등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들은 영화 제작의 어려움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그려내 보이고 있는 대표적인 영화다.
제작자의 횡포나 시나리오작가의 어려움, 시대 상황에 따른 외부적인 압박 등이 표현돼 있는 것이다. 제작자와 감독,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 감독과 배우, 감독과 스태프, 투자사와 제작사의 밀고 당기는 갈등과 아슬아슬한 타협의 줄타기 속에서 한컷 한컷의 필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이해관계가 다른 수백명의 공동작업으로 완성되는 영화 매체의 숙명인 셈이다.
‘킬러 필름스’의 설립자이기도 한 크리스틴 바숑은 이렇게 말한다.
“영화를 만들려면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저예산) 영화의 제작 과정은 선로를 이탈한 미친 열차와 같다. 내 역할은 기차가 일단 역을 떠나게 하는 것이고, 그 뒤로는 가속력을 최대한 이용해서 달리는 수밖에 없다.”
유승찬·영화사 백두대간 전무 idgangna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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