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시니어타운]아시아선수촌아파트 "아시아공원이 정원"

  • 입력 2002년 7월 2일 16시 35분


매일 아침 아시아공원에서 달리기로 운동하는허정 서울대 명예교수
매일 아침 아시아공원에서 달리기로 운동하는
허정 서울대 명예교수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사회. 65세 이상의 비중이 현재의 7%에서 2019년이면 14%가 넘게 된다. 고령화 사회로 진전되면 노동력과 저축이 줄고 건강보험재정이 악화된다는 우려가 많지만 전체 경제활동인구가 늘고 수명연장 기대감으로 노후대책 저축을 늘릴 것이라는 상반된 전망도 있다. 65세 이상이 단순한 ‘부양 대상’일 수 없어진 지 오래다. 또 ‘100세 이상 몇 명이 산다’는 장수촌 실버촌의 개념도 바뀌어야 한다. 고령사회를 엿볼 수 있는 곳을 찾아가 본다.》

“노부부만 사는 경우도 많아요. 아침 저녁 인근 아시아공원을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미국 남부 플로리다주나 애리조나주 노인 휴양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지요.”

서울 송파구 잠실 7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는 실버촌? 1986년 1356가구 규모로 완공된 이 아파트에 재력있는 중년들이 입주한 이후 15년 이상 같은 곳에 살면서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실버촌의 조건〓아시아선수촌과 우성아파트로 구성된 잠실7동의 65세 이상 비율(통계청 2000년)은 7.8%로 서울 전체 평균인 5.4%를 훨씬 웃돈다. 잠실본동에서 89년 분동한 뒤부터 자료를 비교하면 90년 4.8%, 95년 6.2%로 꾸준히 고령화됐음을 알 수 있다. 아시아선수촌만의 65세 이상 비율은 12%에 육박한다. 주민들의 생활수준이나 연령층이 안정돼 있어 이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 계속 눌러 살기 때문이다. 실제로 6월 현재 우성아파트 주민수(6876명)가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주민수(4935명)를 능가하지만 65세 이상 인구는 아시아선수촌이 581명으로 우성아파트(437명)를 웃도는 것. 40평형대가 많은 우성아파트에는 30, 40대가 몰려 있는데 비해 50평형대가 주평형인 아시아선수촌은 50, 60대 이상이 많이 살고 있다는 얘기다. 인근 정신여중 이상복 교사(물리)는 “우성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한반에 4, 5명이 되지만 아시아선수촌 아이들은 1명 있을까말까 할 정도로 아시아선수촌 주민의 연령층이 높다”고 전했다.

2남2녀를 둔 주민 신갑식씨(68)는 “86년말 이곳에 입주한 뒤 아이들을 다 키워 내보내고 아내(66)와 단둘이 살고 있다”며 “2만평이나 되는 아시아공원이 있어 공기 좋고 각종 스포츠시설에 종합운동장 쪽 새마을시장을 이용하는 재미도 쏠쏠해 나이들어 살기에 안성맞춤”이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엔 평소에는 아이들이 드문 편이나 주민들의 자녀와 손자손녀들이 오는 주말에는 넘쳐난다고.

▽아파트에서의 하루〓주민 김용삼씨(77) 역시 52평 아파트에서 부인(73)과 단둘이 살고 있다. 오전 4시50분에 일어나 1시간가량 자전거를 탄다. 한강 둔치까지 이어진 자전거길을 쌩쌩 달리면 몸과 마음은 어느덧 65년 전 양수기 고치러 온 아저씨의 짐 자전거를 훔쳐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아침을 먹고 아파트를 나서 요즘 유행하는 온열치료를 받으러 의료기기점 2곳을 들른다. “치료비가 얼마냐고요? 공짜지요. 치료기 홍보하는 거니까. 절대로 사라고 하지 않아요. 그런데 왜 좋고 얼마나 필요한지 세뇌를 시키기 때문에 매일 가기 귀찮아서 결국 사는 경우가 많지요.”

점심을 먹고 경로당에 나가 장기를 두거나 친구들과 시국이나 가족 얘기를 하다 저녁에 돌아오는 것이 하루 일과. 주민들 중에는 법조계나 의료계 종사자들이 절반 가까이 돼 ‘정년’을 넘어 일하는 경우가 많다.

“저도 사업을 하다 64세에 물러났어요. 3년 뒤 2곳에서 빌딩관리를 하면서 월 70만원 받았습니다. 70이 넘으니까 그것도 시켜 주지 않아요.”

▽아파트 속 경로당〓말끔하게 치워진 방 한쪽으로 냉장고 싱크대가 보이고 다른 한쪽으로 책상 노래방기구 오디오 장식장 평면TV가 놓여있다. 아파트 거실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은 평면TV 위에 붙여진 ‘민병순할머니 기증’이란 쪽지 위에서 깨진다. 아파트 중앙에 자리잡은 경로당. 삼성 구조조정본부 이학수 사장의 어머니인 민병순씨(87)는 “아들이 대통령 대상을 탔을 때 신문에 났다”고 자랑한다.

“나이가 들수록 한곳에 진득이 있어야 돼. 난 아들만 둘인데 작은아들 집에 갔다간 금방 돌아오지. 이집 저집 자꾸 돌아다니면 아들 내외가 ‘어머니가 또 저집에 언제 갈까’ 하고 기다릴 거 아니야.”

“여기도 결식노인이 있데. ○○동 할머니는 하루 두끼 먹는다지. 며느리가 10시나 11시에 아침밥 차려주고 동창회다 골프모임이다 나가면 저녁이라는 거야.”

“돈 있는데 사 먹지. 요즘은 해가 긴데 늙은이가 얼마나 배가 고파.”

‘할머니방’에서 ‘형님’들과 얘기꽃을 피우던 양재연씨(73)는 “아파트안이 훨씬 넓고 편하지만 이곳에선 또래들과 어울릴 수 있어 매일 ‘출근’한다”고 말한다.

“두시간 꼬박 쪼그리고 앉아 딴 돈이 90원이네.”

‘치매 예방에 좋다고 해서 친다’는 고스톱 할머니들 모습 역시 경로당의 익숙한 풍경이다.

▼살아보니…

허정 서울대 명예교수(70)와 부인(70). 나란히 앉아 아파트 상가 음식점에서 된장찌개를 먹거나 손잡고 아시아공원을 산책하는 이곳 주민의 ‘전형’이다. 그러나 오래된 아파트로서는 드물게 가구당 2대꼴인 주차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이곳에 자가용이 없는 ‘예외’이기도 하다.

“미국 유학시절 아이젠하워 전 미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심장병 전문의 폴 더들리 화이트 박사의 강의를 들었는데 자가용이 없으면 20∼30년 더 산다는 것이었어요. 많이 걷고 유산소운동을 하는 것이 그만큼 건강에 좋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는 서울대 보건대학원장 시절 4년간 관용차를 이용한 것을 제외하면 평생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요즘도 경로우대증을 갖고 지하철을 타고 있다. 아침 6시반이면 일어나 5분간 걷고 25분 뛰는 것 역시 건강비결. 그러나 몇 달전부터 허리가 아파 당분간 25분 걷고 5분 뛰고 있다. 조반석죽(朝飯夕粥)을 지켜 아침(9시경) 점심(2시경)을 많이 먹고 저녁은 오후 6시 전에 과일이나 요구르트 정도로 간단히 먹는다. 술은 한번 발동이 걸리면 소주 2∼3병에 담배까지 피운다. 약은 되도록 먹지 않고 커피는 마시고 싶은데로, 고기는 많이 먹는다. 잠은 9시간 정도 충분히 잔다.

그의 건강론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40년6개월간 예방의학과 의학사를 강의한 데다 아시아전통의학을 찾아 ‘장수촌’을 누볐기 때문. 요즘 강의요청도 건강관리에 관한 것이다.

“잡담이지요. 말년에는 사회적 역할이 달라집니다. 공자는 50에 ‘하늘의 뜻을 안다’고 하지만 후배와 제자들이 외국에서 새로운 학문을 배워와 나는 자문위원이나 시키고. 그래서 전공을 바꿔 의학사를 연구했는데 공자가 미식가였다든지 정약용이 종두법을 도입했으며 의학에도 조예가 깊었다든지 흥미로운 것이 많아요. 그러나 이에 관한 강의요청은 1, 2년에 한번 있는 정도죠.”

다시 계속되는 ‘건강강의’. △이름난 의사를 찾기보다 단골의사를 갖는 것이 좋다 △좋은 음식 나쁜 음식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목욕을 자주 하되 때를 밀지 말고 비누를 적게 쓰자.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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