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월드컵 8강전에서 격파한 스페인은 16세기 남미의 여러 나라를 식민지화하고 스페인어를 영어 다음의 세계어로 보급했던 세계 무역의 대국이었으며 세계 축구의 강자다.
그러한 스페인을 꺾고 우리에게 월드컵 4강 진출의 영광을 가져다준 한국 축구팀의 감독 거스 히딩크가 네덜란드인이라는 것이 우연일까. 조선시대 우리나라에 귀화해 우리에게 총포 제조법과 병술을 가르쳐 주었던 첫 귀화인인 네덜란드 출신의 박연(네덜란드명 벨트브레)이 400년 만에 히딩크로 다시 태어나 한국에 온 것은 아닐까.
박연 이후 400년간 먼 나라였던 한국과 네덜란드를 400년 만에 다시 짝지어준 2002년 6월 22일은 이곳 네덜란드에 사는 한국인 교포들에게는 물론 이곳에서 28년간 타향살이를 하는 필자에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감격의 날이었다.
네덜란드는 독일, 프랑스, 영국이라는 강대국 틈에 끼어 있지만 매우 모범적인 무역국으로 번영하고 있는 나라다. 일찍이 16세기부터 청교도적인 정신을 가지고 국제해상 중개무역으로 번성해왔다. 부존자원이 없는 탓에 해외로 눈을 돌린 그들은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세계를 누비며 중개무역으로 큰 이익을 보았다. 이들은 인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각종 물건들을 사와 이웃나라에 팔았다. 영국보다 한발 앞서 세계 무역을 리드하며 해상권을 장악한 것이다.
이때 이미 인도네시아라는 엄청난 식민지를 개척했고 남미의 수리남과 아루바 등 카리브해 열도들을 식민지화했다. 이 동인도회사의 배는 마침내 조선과 일본에까지 왔다. 배가 난파해 조선에 귀화한 최초의 서양인 벨트브레는 바로 네덜란드인이었고 그 후 다시 배가 난파해 조선에 억류된 하멜 일행은 갖은 고생 끝에 14년 만에 탈출해 귀국 후 ‘하멜 표류기’를 출판해 조선을 처음으로 세계에 알렸다. 이 시기를 역사학자들은 ‘네덜란드의 황금시대(Golden Age)’라고 부른다.
이곳 네덜란드의 어린이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배워 웬만한 이웃나라의 언어는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대개의 외국인은 네덜란드에서 의사소통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고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이런 예를 볼 때 한국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중국어와 일본어를 너무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인에게는 일본어로, 중국인에게는 중국어로 말할 수 있을 때 무역이 성장한다.
한국은 여러 언어, 특히 동양의 언어를 잘 구사해야만 동북아의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에 새로운 무역황금시대가 도래했다. 네덜란드가 17세기에 ‘황금의 시대’를 맞았듯이 한국은 월드컵을 통해 얻은 자신감을 토대로 더욱 세계를 향해 열린 사회가 되어 21세기의 ‘신 황금시대’를 일구어 가는 주역이 되기를 기원한다.
박영신 ´나는 네덜란드의 개성상인´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