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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딩크 수기]<1> 제2의 조국 대한민국 |
▼“마지막 1분에 기회만들 역량 갖게됐다”▼
나는 그 친구에게 “한국이 너무 좋고 선수들도 너무 잘 따라줘 모든 것이 순조롭다”고 말했다. 월드컵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자신이 있었다.
한국은 이날 프랑스에 패했지만 훌륭한 경기를 펼쳤다. 한국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방식과 흐름은 박수를 받을 만했다. 한국 선수들이 스스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됐고 사기도 크게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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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팀은 앞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와의 경기를 통해서도 많은 것을 얻었다. 하지만 프랑스 팀은 특히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매우 매력적인 선진 축구를 펼치는 팀이다.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는 한국팀이 오히려 과거 전성기 때의 프랑스팀 전력만큼 매력적인 경기를 보여줬다. 한국팀이 상대 선수들을 압박하고 견제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프랑스팀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 내게 와서 “우리에게는 경기하기에 무척 더운 날씨였다. 한국팀은 원하는 대로 맘껏 플레이를 펼쳐 보였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었다”면서 불평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 프랑스팀 선수들은 매우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나는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세계 일류의 프랑스팀이 그런 태도를 보인 것은 한국팀에는 더없는 찬사였다.
나는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한국팀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한국 선수들은 휘슬이 울리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찬스를 만들어냈다. 시간이 없어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한국 선수들은 희망을 만들어냈다. 인저리 타임에 들어가 91분이나 92분이 되었을 때도 한두 차례의 찬스를 만들어냈다. 한국 선수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상대팀을 무너뜨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나는 평소 선수들에게 “이제 마지막 1분을 남겨두고도 충분히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말해왔다. 한국 선수들은 나중에 이탈리아와의 월드컵 8강전에서 그걸 분명하게 증명했다. 나는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0-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이 다 되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한국 선수들은 절대로 멈추는 법이 없었다. 정말 자랑스러운 팀 아닌가.
사실 나는 지난해 한국 선수들을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희망을 봤다. 한국 선수들은 월드컵 자체를 영광으로 생각했고 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이런 마음가짐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지난해 2월12일 두바이에서 열린 아랍에미리트와의 경기 전날 밤에 설기현이 유럽에서 도착했다. 다음날 나는 일부러 그에게 “경기에 출전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정신력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다. 설기현은 “이틀 전에 90분을 풀타임으로 뛰어 피곤하지만 30분 정도는 자신 있다”고 대답했다.
바로 이 점이었다. 한국축구가 이전까지 어떤 성적을 거뒀는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월드컵 때 응원석에서 선보였던 카드섹션의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좋아한다. 강한 의지가 있으면 못할 게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선수들을 강하게 조련했다. 싸움닭을 만들고 싶었다. ‘나이스 가이(nice guy)’는 책임을 회피하는 겁쟁이에 불과하다. 우리 선수들이 실전에서나 연습경기 때 어지간히 다쳐 쓰러져 있어도 팀 닥터를 안내보냈다. 선수들이 강한 정신력을 갖추고 있어야 기술이든 전술이든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훈련 때 욕을 많이 하는 것도 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대표팀 선수를 선발할 때도 이 점을 가장 먼저 봤다. 체격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과거 한국대표팀은 유럽에 이기기 위해 키가 큰 선수들을 좋아했던 모양인데 그럴 필요가 없다. 과거의 명성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나는 무명 선수들이 대선수가 되는 경우를 숱하게 봐왔다. 내가 데려다 키운 호마리우나 코쿠도 그중 하나다. 선수들이 이기고자 하는 의지만 갖고 있으면 된다. 이후에 이들이 어떤 종류의 플레이를 할 수 있는지 본 후에 감독이 가장 적합한 전술을 찾아내면 된다.
한국 선수들은 훌륭했다. 투지가 넘칠뿐더러 자신감에 차 있었다. 내가 지난해 프랑스, 체코에 대패를 당하고도 계속 유럽 강팀과 경기를 갖길 원했던 것은 선수들의 정신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선수들에게 “물러서지 마라. 유럽에 이기기 위해서는 유럽과 계속 싸워 실수를 하고 그 실수에서 배움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가 신인 선수들을 과감히 기용한 것도 이들이 실수에서 배우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크로아티아와의 두 차례 평가전에서 처음으로 유럽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 1승1무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한국은 이 경기에서 수비 불안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크로아티아 공격수의 빠른 2선 침투에 당황하지도, 속지도 않았다. 오랜 기간 반복한 실수로부터 배운 것이었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한국 선수들이 늘 세련된 축구를 하기 원했다는 점이다. 그런 만큼 나는 상당히 공격적인 축구로 매력적인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
한국팀은 올 3월 내 마음의 고향인 스페인 라망가에서 실시한 전지훈련 때부터 누구도 무시 못할 팀이 됐다. 2월 골드컵대회 때까지 주변의 비판을 무시하고 꾸준히 실시한 체력훈련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는 여러분이 더 잘 알 것이다. 우리는 핀란드에 완승을 거뒀고 터키전 때는 수비수들이 스리백과 포백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무실점으로 비겼다.
월드컵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이 경기 파주 트레이닝센터를 방문했다. 나는 대통령에게 “한국이 16강에 진출하면 선수들의 군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고 꿈은 이루어졌다. 한국 선수들은 이제 더 큰 꿈을 위해 세계 무대로 나갈 것이다.
정리〓배극인기자 bae2150@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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