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국 최초 경제특구 ‘선전’(深土川)

  • 입력 2002년 7월 12일 13시 26분


◇ 돈과 사람 북적, 자고 나면 변한다

1979년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후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고 있는 도시 선전(深土川). 30층 이상의 고층 아파트와 빌딩, 왕복 12차선의 넓은 도로는 중국 정부와 외국인들의 투자가 집중돼 계획적으로 개발된 도시임을 보여준다. ‘사회주의 홍콩’이라 불릴 만큼 분위기가 홍콩에 가깝지만 홍콩의 4분의 1내지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저렴한 물가 때문에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이 벌어지던 날 중국 선전을 가기 위해 두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홍콩에서 내렸다. 홍콩 흉홈(Hung Hom)역에서 중국 선전에 가까운 종점 뤄후(Luo Hu)역까지는 우리 지하철과 매우 흡사한 구광철도(KCR)로 40분 정도. 분명 홍콩은 1997년에 중국에 반환됐지만 선전으로 가려면 여전히 외국에 입국하듯, 여권과 중국 비자를 준비하고 세관을 통과해야 한다. ‘50년 동안 자유경제체제를 유지한다’는 영국과 중국 간의 약속에 따른 것. 이곳은 관광객뿐 아니라 선전과 홍콩을 오가며 출퇴근하는 사람들로 늘 북적댄다. 홍콩의 출경(出境) 카운터를 지나 세관을 통과한 뒤 나타나는 다리를 건너면 국경을 넘어가는 셈이다.

홍콩에서 쓰는 광동어와 선전의 북경어가 판이하게 달라 선전 전문 가이드를 다시 만난다. 입경(入境) 카운터를 나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은 길게 늘어서서 광고 전단지를 내미는 여자들. “아파트 분양 광고예요. 선전은 과거에 온통 농지뿐이었지만 지금은 죄다 아파트가 들어섰어요.” 북한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어 한국어 실력이 뛰어난 중국인 가이드 강혜씨의 설명이다. “땅 파서 먹고살던 농민들이 이젠 건물 하나씩 짓고 임대료로 생활해요.” 그러고 보니 사회주의 중국도 1998년부터 주택분배 제도를 폐지해 돈을 주고 집을 마련해야 하는 형편이라는 신문기사가 떠오른다.

▲ 민속문화촌·금수중화 가볼 만

본격적인 관광은 뤄후역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화교성(華僑城)에서 시작된다. 중국 소수민족의 생활상을 그대로 펼쳐놓은 중국민속문화촌과 드넓은 중국대륙의 명물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소인국 금수중화(錦繡中華)가 이웃해 있다. 1991년에 개장한 민속촌은 22만2000m2에 21개 민족, 24개 마을을 실물 크기로 그대로 재현하고, 해당 소수민족이 안내를 맡는다.

이곳에서는 조선족을 비롯해, 여자에게 동침 선택권이 있어 당첨의 영광을 얻은 남자만이 여자와 합방할 수 있다는 모소족 등 중국 곳곳에 뿌리내린 다양한 종족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넓은 민속촌을 돌아보는 데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곳곳에 옮겨 심어놓은 야자수와 각 민족이 즐겨먹는 채소밭, 민간신앙의 흔적까지 섬세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의 후예가 선보이는 기마쇼도 장관이다. 거친 말을 타며 칼과 창을 휘두르고, 허리가 꺾일 듯 상체를 뒤로 젖힌 채 몸싸움하는 모습에서 아찔한 스릴마저 느껴진다.

그러나 중국민속문화촌의 백미는 단연 야간에 실내와 실외에서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두 편의 공연이다. 중국 전통의상과 소수민족의 복식문화를 재현한 실내공연은 대규모 패션쇼와 무용, 곡예, 연극이 접목된 환상적인 종합예술이다. 평균 170cm 이상의 늘씬한 미인들이 매번 화려한 복장으로 온몸을 휘감은 채 새침한 몸짓으로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중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객들도 황홀감에 몸서리칠 정도.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공연의 마무리가 아쉽게 느껴질 만큼 이 공연에서 완성도가 느껴지는 것은 출연자 전원이 소수민족예술대학에서 선발된 사람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 빼어난 미모에 타고난 민족성과 훈련된 실력까지 겸비하고 있다. 게다가 매년 공연 내용과 의상을 고치고 다듬어 업그레이드한다.

화려한 의상쇼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사람들은 야외공연장으로 몰려가 자리를 잡는다. 공연장에 들어서며 가이드가 “이곳에서 인해전술의 진가를 볼 수 있다”고 귀띔했건만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석과 마주보는 계단식 무대와 공연장 양 입구에서 밀물처럼 밀려드는 출연자들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대륙과 어울리지 않을 듯한 검은 피부를 하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춤추는 소수민족 와족과 아라비안나이트의 주인공 같은 위구르족에 이어 긴 나무다리에 올라서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 사람들, 바로 코앞에서 가면을 바꾸는 경극, 양귀비를 비롯한 중국의 역대 미인 등 중국을 대표하는 민족과 풍물을 한자리에 모아 눈을 깜박일 수 없을 만큼 정신없이 볼거리를 쏟아낸다. 한 공연에 등장하는 인원이 500명이라니, 중국의 거대한 규모와 인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민속촌과 이웃해 있는 금수중화는 80개가 넘는 중국의 명승지를 축소해 놓은 대규모의 소인국이다. 쯔진청의 구룡벽을 시작으로 중국의 3대 석굴인 막고굴, 용문석굴, 운강석굴을 비롯해 낙산대불, 두보초당, 소림사, 이화원, 만리장성, 진시황릉 등을 실제와 동일한 재료를 사용해 세심하게 만들어 반나절 만에 중국대륙 전역을 돌아보는 셈이다. 2km로 축소한 만리장성과 저마다 표정이 다른 진시황릉의 기사들, 그리고 거대한 쯔진청은 사람이 옆에 서 크기를 비교하지 않는 한 사진에 담으면 눈속임하기 좋을 만큼 정교해 보인다.

잘 꾸며놓은 민속촌과 소인국에서 중국 전역을 유람한 뒤 찾아간 재래시장에서는 선전 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경험할 수 있다. 의자 2 개에 큰 거울, 연예인 사진을 다닥다닥 붙여놓은 벽에 기대 한가롭게 자기 머리를 빗질하는 남자 미용사, 낯익은 중국배우들의 포스터가 얼굴마담으로 나선 비디오·DVD 상점, 그리고 연기와 함께 코를 유혹하는 노점의 기름 냄새. 뭔가 다른 듯한 그들의 모습에서도 건물 창 밖에 걸린 빨래만은 어디를 가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리고 그 골목길에서 맛보는 구수한 한국음식. 할아버지가 함경도 출신이라는 중국교포 김용수씨가 운영하는 이화원의 감자탕 국물맛은 한국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진한 맛을 낸다. 발 마사지실과 노래방까지 운영하고 있는 그는 한국에 종종 나와 업소를 돌아보고 직접 인테리어 소품을 구입할 정도의 적극성과 후한 인심으로 인근 선전대학에 유학중인 한국 학생들은 물론 홍콩 교민들에게까지 유명하다.

선전을 빠져나와 비행기를 타기 위해 다시 홍콩으로 향하는 길, 홍콩에서부터 동행하며 꼼꼼히 챙겨준 홍콩-선전 전문여행사 골든마일(금강여행사·서울사무소 02-3472-2790) 소속의 가이드는 이상하다는 듯 한마디한다. “지금껏 한국인 관광객들 중 홍콩이나 선전에 와서 해수욕하는 사람을 못 봤어요. 삼면이 바다고 수십개의 무인도가 인접해 있는 홍콩까지 와서 바다를 안 보다니….” 그러고 보니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선전의 남해호텔(南海酒店)에서 이틀이나 머물면서도 바다에 발을 담그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남는다.

< 홍콩·선전 = 구미화 주간동아 기자 >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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