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인생의 황혼에서´,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

  • 입력 2002년 7월 12일 17시 54분


전원에 직접 지은 자신의 집 앞에 앉아 있는만년의 헬렌 니어링 [사진제공=민음사]
전원에 직접 지은 자신의 집 앞에 앉아 있는
만년의 헬렌 니어링 [사진제공=민음사]
◇인생의 황혼에서/헬렌 니어링 엮음 전병재 박정희 옮김/194쪽 8500원 민음사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로저 로젠블라트 지음 권진욱 옮김/200쪽 7800원 나무생각

벗에게.

얼마 전 스피커를 바꾸었습니다. 오랜동안 귀를 길들여온 옛 스피커가 거듭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지요.

제법 해묵은 포도주같이 맛깔난 소리를 들려주던 녀석이었는데, 팔 지경도 안되겠다 싶어 베란다에 내놓고 보니 그 처량한 몰골에 코끝마저 찡해졌습니다. 잘 부려먹고서 효용이 다했다고, 치하 한번 없이 괄시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새로 들여다놓은 녀석이 말썽입니다. 오디오 잡지의 요란 뻑적지근한 상찬과 달리 어딘가 귀를 쏘는 것 같은 생경한 소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단골 오디오가게에 전화를 했지요. 며칠 계속 듣다 보면 좋아진다나요. 길이 든다면서. 오디오광들은 그렇게 신품이 길이 드는 과정을 ‘에이징(Aging)’이라고 한답디다.

에이징이 무엇이던가요? 나이가 드는 것? 그게 다가 아닌가봐요. 영어에서는 빡빡하던 것이 손을 타서 유연해지는 것, 거친 모서리가 닳아 반들반들해지는 것, 그런 ‘길이 드는 과정’까지 에이징이라 하는 모양입니다.

마침 책상 앞에 ‘에이징’자가 붙은 책 두 권이 도착했습니다. ‘타임’지 에세이스트가 쓴 ‘Rules for Aging’이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고, 헬렌 니어링의 ‘Light on Aging and Dying’은 ‘인생의 황혼에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됐군요.

단숨에 읽어보았습니다. 요즘 제 가슴속의 뻥 뚫려 있던 것, 뭔가 헛헛하던 것, 마셔도 마셔도 남아있는 갈증 같은 것을 조금은 달래줄 듯 해서였죠.

웬 때아닌 나이타령이냐구요? 비웃지 마십시오. 저도 흰머리만 뽑아내 세필(細筆) 붓 하나를 엮을 정도는 됩니다.

나이든다는 게 시쳇말로 무슨 ‘진입장벽’이 있답디까. 처음엔 천천히 나중에는 하루가 다르게,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살면서 끊임없이 겪어야 하는 과정 아니겠습니까.

객쩍은 소리를 늘어놓았네요. 책 얘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니어링은 ‘인생의 황혼에서’에 ‘나이들고 죽어감’에 대한 고금의 현인들의 통찰을 모두어 놓았습니다.

블레이크의 말부터 들여다 볼까요. ‘영원의 세계는 식물처럼 무기력해진 육체가 죽고 난 뒤 찾아가는 신성한 품이다’라고 했군요. 그러니 ‘가치 있는 죽음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삶을 잘 영위하는 것’(찰스 W 리드비터)이며, ‘서로 다른 옷을 입고는 있지만, 늙음은 젊음 만큼이나 값진 기회’(롱펠로)일 것입니다.

물론 ‘죽음은 인구 과잉에 대한 자연의 해결책’ (버나드쇼)이라는 독설을 받아들이더라도, 죽음 앞에서 손뼉치고 환호할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노릇입니다. 그러나 엮은이가 서문에 쓴 바 “죽음은 잠깐 떨어져 있었던 전체로 되돌아가는 일”이라는 점을 우리가 받아들인다면, 그 유장한 흐름에 쓸 데 없이 설움의 색깔을 덧입힐 필요는 없을 듯 느껴지는군요.

이 책에 비하면,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은 차라리 ‘청년의 서(書)’에 속합니다. 말을 붙이자면 ‘내 주변의 세상 속에서 시니어되기’ 라고나 할까요.

‘당신을 지겹게 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이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보다는 외로움이 낫다’ ‘자기 반성은 적당하게 해야 오래 산다…’

개중에는 서로 모순되는 명제들도 많습니다. 요컨대, 58개 모든 계명을 곧이곧대로 외우려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읽으면서 때로 무릎도 치고, 때로 반발심이 생겨서 바닥에 내팽개쳤다 다시 집어들기도 하는 것이 속 편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는 동안 뭔가 불어난 듯한 느낌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건 허리 치수가 아닙니다. 그런게 쌓여서 ‘깊이’라는 게 된다고들 하는 모양입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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