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프볼]정덕화감독, SBS 재건 중책

  • 입력 2002년 7월 16일 15시 49분


《정덕화 감독은 고생이 많았다. 대부분 어려운 시기에 팀을 맡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가 머물렀던 곳은 모두 제 자리를 잡았고, 그만큼 보람도 컸다. 그에게는 리노베이션의 특별한 능력이 있다. 이제는 SBS를 책임져야 할 차례다. 》

정덕화 감독의 프로 무대 데뷔는 지난해 3월 1일 WKBL 현대 하이페리온에서였다. 지금은 그나마 많이 안정된 편이지만, 당시 현대는 사정이 극단적으로 좋지 못했다. 해체설이 신빙성 있게 나돌아 그의 현대행을 만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정덕화 감독은 지난 1년 동안 잘 해냈다. 준우승과 4강 플레이오프 진출. 꼭 성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흔들리던 팀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공은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프로 감독으로 첫 경험. 많은 것을 겪었고, 노력도 많이 했다. 정덕화 감독에게 현대는 이처럼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그러니 떠나는 길이 쉽지 않았다.

▼“짐 챙기는데 3시간이나 걸렸죠”▼

“선수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사무실에서 짐을 챙기는 데 3시간이 더 걸렸습니다. 짐이라고 해봐야 가방 두 개와 박스 하나가 전부였는데... 그게 빨리 안되더라고요. 내가 현대에 정성을 많이 들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생깁디다.”

그 후로 3일 동안을 멍하니 지냈다. 정말 그랬을 것이다. 정덕화 감독은 현대에서 고생이 많았지만, 정열을 다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더욱이 앞으로도 힘든 길을 계속 가야하는 선수들을 고스란히 남기고 떠나는 길이 쉬웠을 리가 없다.

거기에 현대의 위태로운 운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7월초에 여름리그가 시작됨에도 5월 중순까지 감독도 선임하지 못했고, 팀 운명도 1년이 유예된 상태다. 정덕화 감독이 SBS행을 결정하는 순간까지 발목을 잡았던 것은 계약 기간이 남아 있다는 단순한 사실보다 외면하기 힘든 이런 현실 때문이었다.

“현대에 적을 두고 다른 제안을 받는 일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현대에서 해야할 일을 모두 한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죠.”

이왕이면 우승까지 거머쥐고, 현대를 떠날 수는 없었을까? 그가 현대를 잘 끌어왔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아쉬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의 표현대로 어떻게 보면 “현대는 감독 정덕화를 세상에 알리게 해준 팀”이라는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잘하는 팀에 가서 그에 맞는 성적을 내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것은 모두 지켜보는 사람들만의 욕심이다. 그저 그의 결정을 바라보는 것이 옳은 일이다. 발표를 4일 앞둔 4월 21일, 정덕화 감독은 이충기 단장과의 면담에서 감독직을 수락했다.

“주위 어른들과 많은 상의를 했습니다. 결국 SBS 제의를 수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언젠가 가야 한다면 기회가 왔을 때 가는 쪽으로 마음을 잡은 것입니다.”

▼네임 밸류 NO, 영원한 벤치멤버도 없다! ▼

젊은 감독들에게 거는 가장 큰 기대 중의 하나는 ‘기존의 틀’을 깨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농구팬들은 이들을 통해 눈에 보이는 전력, 그 팀 선수들의 이름을 보면 대충 감이 잡히는 성적과는 다른 결과를 경험하고 싶어한다. 그것은 눈에 띄지 않았던 선수들이나 가능성 많은 신인들을 잘 다듬어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 뒷받침되었을 때 가능하다.

“6월 1일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면, 모든 선수들에게 기회를 부여할 것입니다. 2년 동안 남자 농구를 완전히 떠나 있었다는 것이 선수들에게는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기존의 것들은 크게 염두에 두고 싶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덕화 감독이 밝힌, 팀을 어떻게 꾸려 나갈 지에 대한 요지다. 스포츠에서 이처럼 혁명적인 말도 드물다. 실제로 오랜 동안 벤치에 머물렀던 선수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매일 반복되는 훈련에 대해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들이 많다. 주전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경기에 투입되는 시간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사실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훈련은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없다. 이런 부분에서 정덕화 감독은 특별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실제로 지난 시즌 현대 선수들의 출전 시간은 주전과 비주전에 큰 차이가 없었다.

“어떤 선수들이든 단 1분이라도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선수들 스타일을 하나하나 꿰뚫어야지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정덕화 감독이 sbs 신임 사령탑으로 선임되자, "아직 이르다"는 말이 있엇다. 같은 연배의 유재학 감독도 있지만, 창단부터 베테랑을 선호했던 SBS로서는 너무 파격적인 인사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이만 가지고 정덕화 감독을 말할 수는 없다. 그는 벌써 지도자 생활 11년째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정덕화 감독은 완벽한 것을 추구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작은 연습 하나도 그냥이 없다. 다음 시즌을 위해 모든 것을 꼼꼼하게 준비할 것이 분명하다. 김성철, 은희석 등의 공백으로 전력 누수가 많은 상황이지만, 팀 성적이 형편없이 가라앉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한 것도 이런 ‘대충 넘어가지 않는’ 성향 때문이다. 약점으로 지적되는 ‘경험 부족’도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 아니다. 그의 이력서에 적힌 것처럼 고등학교에서 여자실업, 대학에서 남녀 프로팀까지 모두 경험한 지도자는 많지 않다. 더욱이 대부분 어려운 순간에 팀을 맡았고, 훌륭히 재건해 놓았다. 단순히 ‘젊은 감독’으로 그를 바라보는 것이 어색한 것이다.

정덕화 감독은 용병을 관찰하기 위해 지난 5월 9일 미국으로 떠났다. SBS행을 결정한 후 불과 보름이 지난 시기였다. 아직 팀 정비에 대한 구상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시즌 목표는 확실히 밝혔다. 바로 “지난 시즌보다 나은 성적이 될지는 모르지만, 플레이오프에는 반드시 진출하겠다”는 것이었다.

최국태 기자/제공:http://www.jumpba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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