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 노마드’란 직업(job)을 따라 유랑하는 유목민(nomad)을 일컫는 신종용어다. 부르주아적 보헤미안인 보보스(Bobos)와 구별되는 이들의 삶은 세계화와 디지털화, 개인주의의 격렬한 흐름 속에서 지금까지 정착시대 인간의 삶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직업을 자주 바꾸거나 꾸준한 관계를 싫어 하면서 온 오프라인 세계를 넘나 드는 ‘유목민처럼 떠돌아 다니는 기질’로 넘쳐 있다고 말한다. 이 유동성의 세계는 우리의 생활조건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독일인 저자는 세 사람의 독일인 예를 든다.
사진작가 알렉산더 슈텐첼은 고정된 직장이 없고 자동차도 집도 없다. 1년에도 몇 번씩 흥미로운 사람들을 찾아 세계를 여행한다. 그의 집은 세계 도처에서 언제라도 연락할 수 있는 인터넷 홈페이지다. ‘안정이란 어떤 희생을 치른 다음 그에 대한 대가로 받게 되는 보상’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
초등학교 교사였던 하이데마리 슈베르머는 54세때 물건들과 자동차를 처분한 데 이어 의료보험 은행구좌도 취소한다.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하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없이 독일 전국을 두루 돌아 다닌다. 그녀에게는 돈이 필요없다. 필요할 때마다 노동력을 끊임없이 교환하면 되기 때문이다.
작가 갈산 치낙은 전 유럽을 돌아 다니며 유목민의 문화를 소개한다. 그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자연이 행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부(富)는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이들은 생존하기 위해 노동을 하지 재산 증식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다. 생산성은 노동시간이 아니라 행복감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즉, 안정이란 몸의 정착이 아니라 내부의 평온이라는 것이다.
이 책은 어떤 의미에서 새로운 트랜드에 대한 청사진이라기보다 현재에 대한 경고로도 읽힌다.
‘2020년 어느 잡노마드의 회상’이란 대목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2000년, 대부분 사람들은 위기 예방수단으로 보험, 예금, 토지 소유 등에 의지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래성을 쌓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재산은 햇빛을 받은 얼음처럼 녹아 내렸고, 보험은 많은 돈을 쏟아 부었지만 재정 곤란 상태를 극복할 수 없었다. 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다 보니, 연금보험과 의료보험, 실직보험은 파산 상태가 되었다. 그들은 행복했던 지난날을 회상하며 새로운 위기 예방 모델을 생각하게 되었다. 바로 다운 사이징(Downsizing)!…. 이제 많은 사람들은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만을 소유했고, 값비싼 물건은 친구나 이웃과 서로 나누었으며 세계 도처에 퍼져 있는 네트워크를 통해서 물건과 서비스를 현금 없이 교환하기 시작했다.’
다소 낭만적이기까지 한 이런 주장이 과연 20년후 들어 맞을 지는 모르겠으나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작은 생각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독을 권할 만하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