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신수동 서강대의 성 이냐시오관 성당에서 열린 고 테오도르 게페르트 신부에 대한 장례 미사.
일본 조치(上智)대 시절 고인의 제자였던 김 추기경은 이날 직접 미사를 집전하면서 그와의 인연을 하나하나 회고했다. 사랑과 존경, 안타까움이 가득한 강론이었다. 서강대 초대 이사장을 지낸 고인은 13일 일본 도쿄의 로욜라 하우스에서 98세를 일기로 선종(善終)했다.
“게페르트 신부님은 지금 분명 하늘에 계십니다. 그곳에서도 생시와 같이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나는 한국과 한국 교회, 서강대학교를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제자인 너와 강우일 주교를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모든 일을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 하여라’고 하실 겁니다.”
고인과 김 추기경은 스승과 제자로 첫 인연을 맺은 뒤 무려 60년간 각별한 교분을 나눠왔다.
김 추기경은 “게페르트 신부님은 성격이 중후하신 분이었다”며 “그래서 쉽게 접근하기 힘든 인상을 줄 수 있지만 가까이서 모시면 자상하고 모성애에 가까운 느낌을 받을 만큼 자애로웠다”고 회고했다.
고인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면서도 건강 악화로 고인이 차라리 빨리 선종하기를 바랐던 추기경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도 있다.
“게페르트 신부님은 당신과 연세가 비슷한 분들이 다 돌아가신 뒤 노쇠의 고통을 오래 겪자 가끔 ‘하느님이 나를 잊으신 것 같다’고 불평 아닌 불평을 하셨습니다. 저는 신부님이 백수(白壽)까지 하길 바라면서도 신부님이 겪을 고통의 나날을 생각해 하느님이 그날을 짧게 해 주실 수는 없을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또 고인과 서강대 설립에 얽힌 일화도 소개했다.
“60년전 제가 학생 때 신부님은 제가 있던 기숙사의 사감 신부님이셨습니다. 신부님은 어느날 저를 불러 사제로서의 내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기회가 되면 장차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반가우면서도 놀라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였고 일본에 사는 외국 선교사들에게도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 추기경의 회고에 따르면 고인은 처음 서울 소공동에 자리잡고 예수회원 양성과 함께 대학 설립을 위해 일할 때 혼자서 많은 고생을 했다. 특히 대학 부지를 마련하기까지 부동산 매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뒷거래 등 여러 이유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대학 부지를 마련하고 대학 설립 허가까지 받아낸 것.
김 추기경은 “게페르트 신부님은 산고(産苦)가 컸던 만큼 더 큰 사랑으로 서강대를 사랑했다”면서 “이런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당신이 죽은 뒤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가지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장례 미사에는 윤공희 정진석 대주교,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바티스타 모란디니 대주교, 강우일 이한택 주교, 서강대 총장인 류장선 신부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