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자문기구인 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원회가 쌀 재고를 줄이기 위해 묵은쌀 약 400만섬을 가축사료로 쓰기로 한 것은 낙후된 쌀 정책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미 수년째 정부의 쌀 재고가 적정수준인 550만섬을 크게 초과해 보관할 창고가 모자랄 정도라면 진작에 감산정책을 시행했어야 옳다. 장기 보관되어 품질이 떨어진 1998∼99년산 쌀을 사료로 쓴다지만 추곡수매에 들어간 국고 낭비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쌀이 지나치게 남아돌게 된 데는 정치권과 농정당국에 책임이 있다. 농민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무리하게 쌀 증산정책을 강요했고 농정책임자들은 소신있게 감산정책을 펼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년 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타결 이후 농민들에게 감산을 설득해야 할 정치인들은 거꾸로 추곡수매가를 올리라고 주장하고 농정책임자들도 사실상 방관하지 않았는가.
문제는 남아도는 쌀 문제가 이번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해 평년작 수준인 3600만섬이 생산된다면 올 가을 추수 때 쌀 재고는 1318만섬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내심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을 늘리는 방안에 기대를 하고 있을지 모르나 이는 국민감정 등을 고려해 별도로 결정할 문제다. 남아도는 쌀을 북한에 지원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에서 농민들에게 쌀 감산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지 않았다면 이는 낭비적이고 한심한 정책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쌀 산업의 실상을 솔직히 공개해야 한다. 비록 농민들에게 쓴소리가 될지라도 국가경제를 위해 그들이 해야 할 일과 정부가 할 수 있는 지원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표를 의식한 사탕발림식 정책보다는 장기대책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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