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욱칼럼]서해교전 사과 받아내라

  • 입력 2002년 8월 7일 17시 48분


남북관계가 갈등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 전환된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지만 서해도발에 대한 북측의 책임문제는 사실상 물 건너 간 느낌이다. 이것은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의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한 나머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북측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방지 약속을 받아내겠다던 당초의 방침을 관철하는 데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대북정책의 무원칙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서해 기습공격과 관련해 북측의 책임을 따지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남북대화와 협력관계 발전에 상호신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북한 당국의 책임을 단호하게 물어야 하는 것은 결코 불필요한 대북 강경자세에서가 아니라 신의 성실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남북 협력관계를 위해서다.

▼北 끝내 ´사과 특사´안보내▼

북한 당국은 지금까지 그때 그때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남측과 합의하고는 안 지키고, 도발하고는 딴청 부리기를 단골 전술로 삼아 왔다. 이런 불성실한 태도를 계속 받아줌으로써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북한에 질질 끌려가지 않았는가. 아마도 현 정권 들어 북측과 그나마 줏대 있는 교섭을 벌인 것은 작년 11월 금강산에서 열린 제6차 장관급회담 정도였을 것이다. 이산가족면회소 설치 문제 등 당면한 각종 현안을 협의키로 했던 이 회담에서 북측은 미국의 9·11테러 직후 우리 정부가 선포한 비상경계태세를 해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우리측 수석대표는 이를 단호하게 거부해 결국 회담은 결렬되었다. 북측은 여러 차례 성명을 통해 남측 수석대표에게 입에 담지 못할 인신공격을 가하면서 우리 정부에 대해 그의 해임을 요구했다. 그는 결국 장관 재임 5개월 만에 경질되고 말았다.

정부는 지난주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장관급회담 실무회담에서 서해사태와 관련해 북측의 책임문제를 공동보도문에 반영하기 위해 어느 정도 노력했을까. 북측이 비협조적으로 나왔기 때문에 본회담에서 이 문제를 다루자는 구절을 넣자는 주장이라도 했을까. 만약 그마저 북측이 불응했다면 우리측의 입장 표명 사실만이라도 공동보도문에 넣자고 주장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언론보도에 의하면 이번 회담은 별 다른 진통 없이 예정대로 무사히, 밝은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고 한다.

이건 호사가들이나 생각할 수 있는 객담이지만 만약 6·29 서해교전 후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의 친서를 휴대한 특사를 서울에 보내왔더라면 어땠을까. 특사는 청와대로 김대중 대통령을 방문하고 북한 함정의 공격은 결코 김 위원장의 뜻이 아니었으며, 그 배경은 현재 조사 중에 있으니 오해 없기를 바란다고 정중하게 말했다 치자. 만약 북한 당국이 이렇게 나왔더라면 오늘의 한반도 상황은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김 위원장의 특사는 두 차례 서울을 방문했다. 첫 특사는 재작년 9월 김 위원장이 김 대통령을 비롯한 남한 조야의 중요 인사들에게 추석선물로 보내는 칠보산 송이버섯을 갖고 특별기편으로 온 박재영 북한군 총정치국 부총국장(대장)이었다. 박 대장은 평양에서 직항로로 서울에 와서 6시간 동안 머물다가 돌아감으로써 한반도에 금방 평화와 통일의 기운이 감도는 듯했다. 두 번째 특사는 작년 3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작고했을 때김 위원장의 조문사절로 온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일행 4명이었다. 정 회장에 대한 김 위원장의 특별한 예우를 과시하는 것이어서 적잖은 국민이 감동받았다. 특히 정 회장 빈소에 진열된 김 위원장의 조화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이 완전히 바뀐 것 같은 느낌마저 주었다. 추석선물과 조문을 위해 특사를 파견한 인물이 김 위원장이다. 그가 진정으로 남북간의 평화와 협력을 바란다면 서해교전 같은 중대 사태를 맞아 특사를 못 보낼 이유도 없을 것이다.

▼정부간 회담서 책임 안묻다니▼

그러나 남북관계가 냉각되어 지금은 특사파견은커녕 이번 금강산 실무회담 같은 정부간 회담에서조차 서해사건은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당국은 2일에는 “서해 무장충돌은 미국의 대조선 정책에 따라 남조선 호전 계층이 계획적으로 감행한 도발사건”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기왕의 애매했던 유감표명마저도 완전히 뒤집고 말았다. 그들은 3일자 노동신문에서 “남쪽이 북방한계선을 계속 고집하면 우리 혁명무력은 경고 없는 행동으로 대답할 것”이라는 위협까지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굴하지 말고 북측의 사과를 받아내어야 햇볕정책이 성공하는 것이다.

남시욱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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