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92…밀양강 (8)

  • 입력 2002년 8월 7일 18시 30분


두 늙은 여인네는 영남루를 지나 삼나무 밑을 지나 여자의 집을 지나 아랑각 앞에서 강둑을 내려갔다. 아랑각 앞은 못처럼 물이 고여 있어 장어가 잡힌다고 알려진 장소였다. 여인네들은 짚의 양쪽 끝을 잡고 두세 번 흔들어 반동을 주고는 강 한 가운데를 향해 태반을 던졌다. 그러고는 몇 초 동안 두 손을 모으고 있더니 온 길을 되돌아갔다.

여자가 영남루 돌계단을 내려가려는 그 때, 살려 줘! 등뒤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려 뒤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뜨뜻미지근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여자의 몸에 소름이 쭉 돋았다. 영남루에서 칼에 찔려 죽은 아랑의 혼, 이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이제 곧 기일이니까 혼이 떠오른 것이리라. 남자 품에 안겨보지도 아이를 잉태해보지도 못하고 죽임을 당한 아랑의 무덤 앞에서 태반을 떠내려보냈으니, 그녀가 기꺼워할 리 없다. 아랑은 분명 화를 내고 있을 것이다.

여자는 온 몸으로 보름달처럼 빙그레 웃으면서 강둑을 내려갔다.

짚에 싸인 태반이 물에 떠 있었다. 나뭇가지로 끌어당기면 손이 닿을만한 거리였다. 그 여자의 거시기에서 밀려나온 것, 그 여자와 그 사람이 하나가 된 증거, 그 여자와 그 사람의 아들이 뱃속에 있을 때 잠자던 곳-, 여자는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손에 꽉 쥐었다. 짚에서 꺼내 물에 가라앉혀 주마, 그 여자의 태반이라니, 은어가 뜯어먹고 장어가 둘둘 휘감고 게가 갈갈이 찢어먹게 해 주마!

태반은 여자에게서 도망치듯 천천히 천천히 흐르기 시작했다. 여자는 태반을 따라 걸었다. 고무신이 물구덩이에 빠지고, 흙탕물이 치마 자락에 튀어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여자의 입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제주도 나그네와 잤을 때, 그가 가르쳐준 노래였다.

한라산으로 내리는 물은

일훤남섭돌섭 다 썩은 물이요

아아양 어야 어어요

산지에 축항에 내리는 물은

일천 배 닻줄 다 썩은 물이로다

아아양 어야 어어요

설룬 정녜 우는 눈물은

일천 간장도 다 썩은 물이요

아아야 어야 어어요①

하늘의 달과 수면에 비친 달에 영남루 난간에 몸을 기대고 있는 아랑의 혼이 드러났다. 아랑은 여자와 태반을 보고 있지 않았다. 봄이 되어 봄의 아름다움에 젖어 있을 뿐이었다.

①제주도 민요, 서우젯 소리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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