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살다보면 이런 일이 가끔 일어난다. 자식을 산문(山門)에 보내 놓고 마음 편한 부모는 이 세상에 아직 없는 것 같다. 설령 종교적인 신념과 사상이 확고하다고 해도 부모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이별이 인간적인 연민과 모정의 슬픔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다행스럽게도 작은 소동의 주인공이었던 이 행자는 부모를 설득해 돌려보냈다고 한다. 부모와의 잠시 이별은 인연을 정리하는 행동이 아니라 인정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자기 다짐이나 마찬가지다.
흔히 ‘출가(出家)와 가출(家出)’은 목적의 차이라고 말한다. 가출은 집을 나가는 게 목적이고, 출가는 삶의 방향을 찾아가는 게 목적이다.
그러므로 출가는 가족을 버린다는 뜻보다는, 가정이 얽매이는 한계를 극복한다는 의미가 더 강하다. 부처님도 깨달음을 이루고 가족을 위해 여러 차례 법문을 하셨고 근래에 입적한 성철 스님도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금강산을 함께 구경했다고 한다. 이처럼 출가를 하고 나면 가족은 정을 나누는 혈육의 대상에서 깨달음을 열어주어야 할 중생의 개념으로 전환되는 차이 뿐이다.
해인사 홈페이지를 열어 보면 출가 절차를 문의하는 이들이 참 많다. 그러나 문의하는 이들 가운데 열에 다섯은 행동으로 감행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룬다. 설령 입산한 이들이라 해도 행자 수업을 마치는 이는 겨우 한 둘이다. 해인사를 찾는 행자들은 한달 평균 10명 정도가 된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일주일을 넘기지 못하고 입산하던 길을 되돌아 하산한다.
왜 그럴까. 그것은 출가자의 삶을 화폭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낭만의 길’로 생각하거나 ‘직업전환’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이다. 다시 말해 출가에 대한 ‘목적 의식’이 분명하지 않다는 뜻과 같다. 출가는 관념이나 이론이 아니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문제 의식과 진정한 자각이 이루어질 때 가능한 자기 혁명인 것이다.
난, 어느 날 감행하는 ‘삶의 쿠데타’를 출가라고 말하고 싶다. 자기 안에서 들리는 근원적인 인생의 문제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안일과 타성에 젖은 삶의 자세를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정신으로 순화하는 일이 바로 출가의 정신이다. 이러한 출가정신은 승속(僧俗)을 떠나 일상의 삶 속에서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해인사 포교국장 budda12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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