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소송은 스님들이 증권사를 상대로 낸 이른바 ‘증권 분쟁’이었다. S증권사의 한 직원이 스님들이 맡긴 돈으로 투기성 매매를 해 스님들에게 큰 손해를 입혔다는 게 소송의 취지. 소송 금액도 27억원으로 만만치 않다. 한국 증시에서 증권 분쟁이 어느 정도로 확산되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1999년 이후 한국 증시에서 투자자들의 저변은 급속도로 넓어졌다. 투자자의 의식 수준도 많이 높아졌다. 종교인이 주식투자 한다고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줄어들었다.
실제 지난해 6∼12월 7개월 동안 증권거래소 분쟁조정부에 접수 처리된 민원은 80건이었으나 올해는 7월까지 벌써 141건이나 된다. 이른바 ‘증권 분쟁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셈이다.
▽증권 분쟁을 막아라〓대부분의 증권사들은 회사 전화를 24시간 녹음해 모조리 저장하는 시스템을 갖춘 상태. 비용이 만만찮지만 증권사들은 기꺼이 이를 감수한다.
“내가 분명히 팔라고 했는데 직원이 말을 안 들었다”거나 “애널리스트가 분명히 이렇게 말했는데 나중에 발뺌한다” 등의 고객 항의가 있으면 증권사는 긴 설명 없이 무조건 통화 테이프를 들려준다. 이러면 소송에 걸릴 염려가 없으므로 나중에 소송에 걸려 고생하는 것보다 비용 면에서 더 싸게 먹힌다는 설명.
고객의 주문을 직접 처리하는 탓에 늘 분쟁의 위험에 노출된 객장 브로커들도 나름대로 분쟁을 방지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 대부분의 브로커는 주문을 받는 즉시 “그러니까 이렇게 하라는 말씀이시죠”라고 한번 되묻는 습관이 있다. 즉석에서 확인을 해둬야 나중에 뒤탈이 없기 때문.
브로커들이 가장 싫어하는 게 사라는 건지 팔라는 건지 알쏭달쏭한 주문.
“박과장, 요즘 삼성전자가 참 유망한 것 같아.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그럼 잘 부탁해.”
이런 주문을 믿고 고객 돈으로 삼성전자를 샀다가는 나중에 소송에 걸리기 십상이다. 브로커들은 이럴 때 반드시 “사장님, 그러니까 삼성전자 주식 100주를 사라는 말씀이시죠”라고 반문한다.
한 증권사 브로커 조모씨(30)가 말하는 자신만의 분쟁 방지 노하우.
“객장에서 고객이 말로 직접 주문할 때, 특히 작은 목소리로 비밀스럽게 ‘이 주식 1000주 정도 사줘’ 할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그럴 때는 중국집 종업원처럼 벌떡 일어나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게 소리를 지릅니다. ‘박사장님, 8월12일 오전 10시, ○○○종목 1000주 매수 주문 내셨습니다!’라고요.”
▽보상받기 쉽지 않다〓최근 일어나는 증권분쟁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분야는 일임매매와 전산장애.
일임매매란 고객이 증권사 직원에게 돈을 맡기고 “알아서 불려 달라”고 부탁하는 것. 그러나 현행법상 일임매매가 성립되려면 브로커와 고객이 서면 계약서를 작성하고 이를 금융감독위원회와 증권업협회에 신고해야 한다. 이런 절차 없이 객장에서 이뤄지는 모든 형태의 일임매매는 불법이다.
불법 일임매매는 분쟁이 발생해도 투자자가 돈을 되찾기가 쉽지 않다. 불법 거래를 권장한 증권사의 책임이 더 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애초 양자가 약속을 어떻게 했느냐, 증권사 직원의 매매가 상식에 맞지 않게 부당했느냐, 손해가 난 사실을 투자자가 언제 알았느냐 등을 복잡하게 따진다. 결국 증권사측의 과실이 인정되더라도 이것 저것 제하고 나면 투자자는 몇 푼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전산장애도 마찬가지. 증권사의 전산시스템이 고장 났더라도 ‘그 고장으로 인해 투자자가 손해를 보았다’는 사실이 명확히 입증돼야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
▽분쟁의 소지를 만들지 말아야〓증권분쟁은 증가 추세지만 이에 대한 대비책은 턱없이 부족하다. 각 증권사가 만들어 놓은 분쟁 해결에 관한 내부 원칙이라고 해봐야 “분쟁이 발생하면 직원들은 절대 이를 개인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 회사에 신고해 회사가 일괄 처리하도록 한다’는 식의 큰 원칙뿐이다. 반대로 증권분쟁의 핵심 원인인 불법 일임매매 예방책 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치열한 약정 경쟁을 벌이는 증권사들로서는 적당한 수수료 수입이 보장된 불법 일임매매를 은근히 부추기는 면도 없지 않다.
분쟁을 조정하는 절차와 시스템에 대한 홍보도 부족하다. 지난해부터 거래소와 코스닥위원회는 각각 분쟁조정위원회를 만들어 활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거래소가 220여건의 분쟁을 조정했을 뿐 코스닥은 홍보 부족으로 단 한 건의 조정 신청도 받지 못했다.
증권거래소 분쟁조정부 김용찬 과장은 “최근 분쟁 조정 결과를 살펴보면 증권사 직원보다는 돈을 맡긴 고객 쪽의 과실이 더 높게 반영되는 추세”라며 “투자자가 자신의 책임 하에 명확히 투자를 함으로써 증권분쟁의 소지를 아예 없애는 것이 가장 좋은 투자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증권 분쟁 민원 통계 | ||||
유형 | 2001년 6∼12월 | 2002년 1∼7월 | ||
일임매매 | 11 | 25 | ||
임의매매 | 24 | 15 | ||
주문 집행 관련 | 11 | 37 | ||
전산 장애 | 17 | 36 | ||
부당 권유 | 4 | 3 | ||
기타 | 13 | 25 | ||
계 | 80 | 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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