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얼굴만큼 개인의 삶의 흔적이나 한 시대의 사회적 역사적 족적을 잘 보여주는 대상은 없다”고 생각하는 작가.
그의 자화상은 거대하고 강렬하다. 가로 세로 각각 3∼4m에 달하는 대형 화면은 그의 이국적 마스크로 꽉 찼다. 정면을 응시하는 매서운 눈매, 헝클어진 머리칼이 보는 이를 섬칫하게 한다. 무언가 화면 밖으로 뛰쳐나올 듯 긴장감이 팽팽하다.
그의 자화상은 극사실적이다. 마치 사진처럼 땀구멍 하나, 잔주름 하나, 콧수염 하나까지 세밀하다.
극사실주의(하이퍼리얼리즘)적 얼굴, 터럭 한올까지 사실 그대로 그렸던 18세기 조선시대 선비화가 윤두서의 자화상같다. 한국 현대미술에 나온 자화상 중 그의 작품처럼 세밀하고 사실적인 자화상은 드물다.
거대한 화면, 극사실적 표현, 그것이 모노톤의 색조와 어울리면서 독특한 이미지를 발산한다. 거대한 화면 속 극사실적인 얼굴의 일부를 보면 그건 마치 추상화같다. 가장 사실적으로 그린 얼굴이 추상화라는 허구로 전해오는 아이러니. 그것이 강형구 인물화의 매력이다.
그는 늘 자신의 얼굴을 캠코더로 촬영해 컴퓨터 영상이미지로 저장하고 그것을 다시 출력해 그림 그리는데 참고한다. 자신의 얼굴의 변화를 정밀하게 추적 관찰하는 것이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얼굴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늙은 얼굴. 얼굴에 삶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미래의 모습을 미리 자화상으로 그려 전시하는 것도 미래에 자신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열망이 담겨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허구(미래의 얼굴)에서 진실을 찾아내려는 예술가의 집요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관람객들이 그의 얼굴을 통해 한 시대의 흔적을 읽어내기는 어렵다. 작가의 개인적 내면이 담겨 있으나 이것 역시 읽어내기 어렵다. 그의 자화상이 개인의 얼굴 그림 차원을 넘어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지 하는 대목에선 아쉬움이 남는다. 이는 작가의 고민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앞으로는 수십미터에 달하는 인물화를 그릴 생각이다. 구상하고 있는 그림은 한가운데 할아버지 강형구가 있고 그 왼쪽에 갓난아기 강형구가 있고, 군복무 중인 강형구가 있고, 샐러리맨 강형구가 있고…. 그의 얼굴을 통해 우리 시대 모든 삶을 보여주겠다는 의도다. 이 작품이 완성되면 그는 인물화를 훌훌 털어버릴 생각이다. 02-399-1774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