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다음에 어느 편이 정권을 잡아도 국민을 위한 올바른 국가운영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정권을 잡는 데만 사활을 걸고 있지 정권을 잡은 후 국가운영을 제대로 할 국정운영 능력은 키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대통령이 되고 집권당이 되기에만 급급하지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여당’이 될 준비와 노력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올바른 국정운영을 위해선 미리 비전과 정책도 연구하고 민의도 살피고 인재들도 광범위하게 모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의 교훈’에서 배우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왜 실패한 대통령과 실패한 여당이 많이 나왔는지를 깊이 분석하고 냉철히 반성하는 일이다. 유사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매일매일의 싸움이 바쁜데 그런 한가한 일을 할 여유가 어디에 있느냐, 우선 정권부터 잡고 그후에 보자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항상 그런 식으로 하다가 정권을 잡고도 실패하는 여당, 실패하는 대통령을 양산해 왔다. 그때마다 국정실패의 고통과 피해는 국민이 부담해 왔다.
둘째, 이런 식으로 죽기 살기로 싸움만 하다가 과연 다음 정부에서 제대로 된 올바른 야당이 나올 수 있을까 걱정이다. 이런 식으로 싸우다가는 여당이 되어도 야당 잘 되는 것을 못 참을 것이고, 야당이 되어도 결코 여당 잘 되는 꼴을 못 볼 것이 아닌가. 그 결과는 국정혼란과 표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본래 민주주의도 국가발전도 여당의 수준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야당의 수준이 더욱 중요하다. 정권을 잡아 여당이 되면 오만하거나 국민의 권리를 무시하기 쉽다.
이러할 때 이를 견제해 줄 세력이 야당이다. 높은 도덕성과 원칙을 가진 야당, 국정운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실력 있는 야당이 필요한 것이다. 사실 약하고 어렵고 힘없는 국민이 호소하러 갈 곳은 야당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우리는 ‘정의로운 야당’ ‘실력 있는 야당’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그러한 야당이 나올 것 같지 않다.
요컨대 우리의 고민은 이제 대선까지 4개월밖에 남지 않았는데 어느 정당도 ‘훌륭한 여당’이 될 준비도, ‘훌륭한 야당’이 될 준비도 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는 대통령후보들에게 집권당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하겠다는 공약뿐 아니라 야당이 되었을 때 어떻게 훌륭한 야당이 되겠다는 공약도 함께 발표토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셋째, 30%도 안 되는 낮은 투표율을 보니 국민이 정치에 너무 실망한 나머지 아예 민주주의와 선거에 대한 신뢰를 접지 않을까 걱정이다. 단순히 정치에 대한 불신의 수준을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사실 민주주의는 오랜 역사 속에서 항상 불안한 제도로 이해되어 왔다. 때로는 무정부주의로, 때로는 포퓰리즘으로, 혹은 중우(衆愚)정치로 비판받아 왔다. 민주주의가 인류의 이상적 정치제도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일이다.
그만큼 민주주의는 비교적 최근에 와서 보편화되기 시작했고 아직 취약하고 후퇴하기 쉬운 제도다. 따라서 이는 정성을 다해 키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계화 시대에 나라 밖에서 보면 여도 야도 따로 없다. 다만 대한민국 하나만 있을 따름이다. 여야가 싸움을 해도 상호존중, 정직, 대화, 관용 등 민주주의의 기본원칙과 가치를 지켜야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이익을 깨서는 안 된다. 우리 국민도 민주주의에 보다 깊은 애정을 갖고 선거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모두가 힘을 합쳐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반드시 ‘훌륭한 여당’과 ‘훌륭한 야당’을 함께 등장시키는 ‘희망의 정치’를 만들어야 한다. 다시 한번 월드컵의 함성이 이 땅에 울려 퍼지도록 해야 한다.
박세일 서울대교수·법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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