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약서는 대기업의 회계부정 사건이 잇따라 터지자 SEC가 짜낸 아이디어였다. SEC는 “회계부정이 드러나면 서약서를 제출한 CEO 등을 구속 기소하겠다”고 밝혀왔다. “내일은 또 어떤 기업이 갑자기 폭발할까”라며 걱정하는 투자자들 앞에 CEO가 나서서 ‘내 신상을 걸고 약속하건데 우리 회사는 괜찮다’고 안심시키라는 것이다. 문제가 있는 기업은 빨리 자수하고 고치라는 압박이기도 하다.
서약서를 제출하지 않는다 해도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해선 아직 발표된 것이 없다. 그래도 투자자들의 눈을 의식해서 세계 최대기업들의 내로라 하는 억만장자 CEO들이 속속 서약서를 제출하고 있다.
SEC가 정한 서약서 제출대상은 연간 매출이 12억달러 이상인 947개 상장기업. 그중 6월말로 반기 마감을 하는 702개 기업의 서약서 제출시한이 14일이었다. 시한을 지키지 못할 기업은 5∼15일간의 말미를 요청할 수 있다. 1차 마감 결과가 최종 집계돼 봐야 알겠지만 대체로 10여개사가 문제를 고백할 것으로 월가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SEC나 법무부의 조사를 받는 기업 중 일부는 “조사대상 기간의 회계장부에 대해 확인서명을 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월가의 한 소식통은 “CEO나 CFO들에게 회계문서를 한번 더 꼼꼼히 검토하도록 한 것이 서약서의 진짜 효과”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세계 투자자들에게 회계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데 엔론 사태가 크게 기여했다’는 지적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식의 구시대적 추궁을 연상시키는 서약서가 그래도 투자심리 진정 효과를 발휘한 것 같다. 14일 증시에선 ‘경제가 그리 나쁘지 않다’는 진단과 함께 ‘서약서가 잘 접수되고 있다’는 소식이 호재로 작용했다. 그 결과 주가지수는 3∼5%씩 뛰었다.
홍권희 뉴욕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