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91)의 아내 낸시 여사가 위로 편지를 보내왔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94년 자신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치매에 걸렸다면 쉬쉬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미국인의 사고방식은 우리와 다른 것일까?
여하튼 공공의 이익에서 보면 이들의 행위는 존경할 만하다. 친구 사이인 레이건과 헤스턴은 미국인들이 알츠하이머병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들의 또다른 친구이자 유명배우였던 록 허드슨은 1985년 에이즈(AIDS) 환자임을 고백해 에이즈가 동성연애자만의 천형이 아니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환이라는 인식을 미국인에게 심어 줬다. 이는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됐고 에이즈는 현재 불치병에서 난치병으로 바뀌었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병에 대해 밝히고 그 병의 정복에 앞장선 사람이 적지 않다.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는 95년 승마를 하다 말에서 떨어져 온몸이 마비된 뒤 신경 줄기세포 이식에 관련된 연구의 필요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으며 지난해는 척수마비 장애인과 가족을 위한 교육서비스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현재 백혈병이 불치병의 굴레를 벗어난 것은 암으로 숨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명투수 프레드 허친슨의 유지(遺志) 때문에 가능했다. 그의 뜻에 따라 설립된 허친슨암센터의 도널 토머스 박사는 세계 처음으로 골수 이식을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병명을 알리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다. 신문 부음기사의 사인(死因)도 늘 지병 아니면 숙환이다. 이는 병을 병이 아니라 약점으로 삼는 일부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많은 대기업 간부는 회사에 비밀로 할 것을 전제로 병원에 다닌다.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이 알려지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런 문화는 근거없는 오해를 낳기도 한다.
91년 전립샘암으로 숨진 김동영 전 의원은 한때 에이즈에 걸렸다는 루머에 시달려야 했다. 최근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감기 뒤 폐렴에 걸렸다고 발표해도 ‘혹시…’하며 믿지 못하는 것도 이런 ‘병 문화’와 관련이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 문화에서 자신이 폐암에 걸렸음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금연 운동에 앞장섰던 코미디언 이주일씨는 진정 위대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많은 국민이 흡연의 해악을 새삼스레 깊이 인식했다는 점에서 이주일씨의 행동은 ‘의사 수백 명이 몇 년 동안 할 일을 한 것과 같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것도 죽음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심신의 고통과 싸우며 한 행동이었기에 그의 뜻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비록 그가 떠나도 ‘담배는 독’이라는 그의 마지막 경구(警句)는 오래 남을 것이다.
이성주기자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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