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05…삼칠일 (4)

  • 입력 2002년 8월 22일 17시 53분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여자는 보자기 꾸러미를 풀고 제기를 꺼내 샘물이 솟고 있는 바위 위에 늘어놓고, 쌀밥, 대추, 시루떡, 북어를 담았다. 그리고 촛대에 초를 꽂고 성냥을 그었다.

여자는 치마가 흙범벅이 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신당을 향해 무릎을 꿇고 이마와 두 손을 땅에 대고 치성을 드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산신님께 비나이다 그 사람의 아이를 갖게 해주시소 아무쪼록 사내아를 갖게 해주시소.

여자는 짚 꾸러미에서 갈치를 꺼내 늙은 상수리나무를 향해 던졌다. 아이를 갖는다! 갈치는 나무 가지를 스치지도 않고 그대로 떨어졌다. 철썩. 바위에 떨어져 뭉개지는 불길한 소리가 났다. 물고기를 던져 나무 가지에 걸리면 아이를 갖는다고 해서 일부러 뱀처럼 긴 갈치를 골랐는데! 여자는 갈치의 대가리를 잡고 팔을 휘둘렀다. 철썩. 몇 번이나 던졌지만 가지에 닿지 않았다. 철썩.

갈치가 여자의 키와 비슷한 소나무 가지 위에 살짝 걸렸을 때,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땀인가 싶어 저고리 소매로 이마를 닦았지만 닦아도 닦아도 흘러내렸다. 비가 후드득 하고 모든 나뭇잎을 두드릴 때야 여자는 비로소 손바닥을 위로 뒤집었다. 비, 하늘이 대답을 주시는 거다, 내 바램은 이루어진다, 나는 틀림없이 아이를 갖는다. 여자는 온 몸으로 비를 맞으면서 산을 내려왔다.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비는 새벽 어둠을 녹이듯 내리다가 여자가 강가로 들어설 때를 가늠했다는 듯 그쳤다. 구름의 틈새로 회색 아침 햇살이 비치고, 1초마다 그 빛의 고리를 넓혀갔다.

여자는 아침 내음을 맡았다. 된장국과 김치 냄새가 아니라도 아침에는 아침 내음이 있다. 꽤 오랜만에 아침을 만난 듯한 기분이다. 그 사람을 만나고부터 나는 아침과 낮을 밤으로 덧칠해버렸으니까, 새카맣게. 꼬끼오-. 첫닭이다. 여자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집에 돌아가야 한다, 누가 보면 애써 들인 치성이 헛수고가 된다. 아무쪼록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기를. 꼬끼오-. 닭이여, 내가 집에 들어설 때까지 울지 말아 다오, 내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힘을 빌려 다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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