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조환익/중소기업, 인력-PL法-환율에 운다

  • 입력 2002년 8월 28일 17시 55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극복은 1000억달러에 이르는 지난 4년간의 무역수지 흑자 덕분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그 중 중소기업들의 수출이 최대 공신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자동차 반도체 선박 등 대기업들의 수출도 제 몫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보다 더 큰 공은 중소기업 개미군단의 1∼2달러짜리 상품 수출에 돌려야 할 것이다.

1998년 33%에 불과하던 전체 수출 중 중소기업 수출 비중이 매년 증가되어 작년에는 42%까지 늘어났고, 전년 대비 수출 증가율도 매년 대기업 수출 증가율보다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왔다. 특히 작년에는 대기업 수출이 21%나 줄었는데도 중소기업 수출은 적게나마 증가세를 보였다.

그런데 요즈음 이 국난 극복의 ‘공신’들이 말수가 없어졌다. 대기업 구조조정도 어지간히 마무리되어 가고 경기도 나아져 기지개를 켜볼까 하는데 중소기업들은 새로운 3중고를 겪으면서 맥이 빠지게 된 것이다.

첫째, 인력 문제다. 벤처기업 붐이 불고 내수부문 경기가 살아난 후 중소기업 경영자가 하는 일은 사람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쓸 만한 인력은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외국인 연수생 확보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더구나 기술인력을 모셔온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이런 판에 정부에서는 주5일 근무제 시행을 서두르고 있다. 물론 중소기업에 유예기간을 주긴 하겠지만 어쨌든 몇 년 안에는 이를 각오해야 하고, 그 경우 비용 부담이 거의 20% 늘어나게 된다고 한다.

둘째, 올 7월1일부터 시행된 제조물책임법(PL법) 시행에 따른 문제다. 앞으로는 중소제조업체들이 제품을 생산한 후 그 제품의 결함으로 10년 이내에 소비자에게 손해가 발생할 경우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다. 결함 없음을 생산자가 입증해야 하는 무한 책임이다. 물론 결함 없는 제품을 만들어 품질경쟁력을 높여야 하겠지만 빈발할 소송 우려와 이에 따른 원가 부담 등으로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걱정이 앞선다. 왜냐하면 한 건 소송으로 회사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환율 문제다. 작년 말에 비해 달러 대비 원화가치가 10% 이상 올라갔다. 영업이익 5∼6%밖에 안 되는 중소기업들은 이 상태에서 수출해봐야 손해다. 이 땅에서 기업하기가 무척 힘이 들어 중국이고 동남아고 나가려고만 한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니 화려한 중소기업 육성 공약이 남발될 것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인들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은 주위에서 정서적으로 중소기업을 이해하고 어루만져주는 사회적 분위기다. 각종 경제제도도 선진화되어야 하고 중소기업들도 홀로 서야 한다. 중소기업이라고 국제경쟁에서 예외일 수 없다. 기술과 품질로 승부해야 하고, 또 많은 중소기업들이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 그렇지만 외환위기 이후 중병을 치른 그들에게 체력보강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더 주자. 그럴 수 없으면 최소한 그들의 하소연에 귀 기울이는 성의 있는 자세라도 보여주자.

조환익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