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박물관 신라실(新羅室)에서 만난 푸른 유리잔은 경이감을 안겨주기 충분했다. 천 몇백년 전 동양의 것이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투명한 푸른 빛. 어떻게 신라인들은 이런 잔을 만들었을까.
중국인들에게도 신라실은 의문을 남겨주는 방이다. 금 알갱이로 미세한 세공을 한, 가지가 돋아난 듯한 찬란한 금관을 보며 중국인도 ‘우리와는 많이 달랐군…’ 중얼거린다는 것이다.
일본의 저명 유리미술가이자 고미술사가인 저자는 책 제목처럼 다소 ‘낯설게’ 들릴 수 있는 명제를 내놓는다. 4세기에서 6세기 초 까지, 신라는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외교를 단절하고 중국문화의 수용마저 거부한 ‘문화의 섬’이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중국문화를 대체한 것은? 바로 중앙아시아의 ‘스텝 루트’를 통해 들여온 로마 제국의 문화였다는 것.
저자는 실증자료를 들어 독자를 설득한다. 머리띠에 나뭇가지를 꽂은 듯한 ‘수목관(樹木冠)’은 그리스에서 시작돼 오늘날 유럽 각국의 왕관으로 계승되고 있지만 중국 문화권에서는 이런 형식의 왕관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손잡이가 달린 잔과 뿔 모양의 잔도 동시대 서양과 신라에서만 발견되며, 중국과 고구려 백제에서는 출토되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저자의 주장은 중국에 치우친 한국고대사 연구의 시야를 넓히는 데 적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료나 유물을 무리하게 자신의 학설을 뒷받침하는 데 끼워맞추려는 흔적도 보인다.
원제 ‘ロマ文化王國 新羅’(2001).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