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지역 태풍피해 현장]동해市 5000여명 나흘째 고립무원

  • 입력 2002년 9월 3일 18시 46분


강원 영동지방을 강타한 태풍 루사는 강릉뿐만 아니라 동해 양양 정선 속초 삼척 고성 등 영동지방 전역에 큰 피해를 남겼다.

이들 지역은 피해 발생 초기에 통신이 두절되고 도로가 유실돼 상황이 제때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으며 3일 현재까지 정확한 피해 규모 파악조차 어려운 곳도 있다.

▼동해▼지난달 31일 657㎜의 폭우로 동해시 삼화동을 지나는 42번 국도 4㎞ 구간이 무너져 내렸다. 길을 따라 나 있던 삼화선(동해∼삼화) 철로도 인근 백복령 산줄기에서 흘러내린 통나무와 흙으로 뒤덮였다.

동해시에서 가장 피해가 큰 삼화동은 외부로 연결되는 통로가 차단돼 고립됐다. 삼화동 인근 신흥, 비천, 달 마을도 고립돼 5000여명의 주민이 나흘째 전기와 물이 끊긴 상태로 고통받고 있다.

3일 하루종일 철로에는 물통과 생수 컵라면 부탄가스 등을 짊어지고 삼화동과 동해 시내를 오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삽을 든 군인들의 행렬도 눈에 띄었다.

마을 주위로 흐르는 폭 70여m의 신흥천이 범람해 마을은 2m 높이의 물 속에 이틀 동안 잠겨 있었다. 이 마을 3000여가구 중 1450가구가 침수되거나 파괴됐다.

40여년간 삼화동에서 살았다는 김흥복씨(79)는 흙투성이의 가재도구를 씻어내면서 “마을이 폐허가 됐다”며 “복구가 아니라 재개발을 해야 할 지경”이라고 한탄했다.신흥천 변에 있는 태권도장은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다. 녹색 매트 대신 갈색 진흙더미가 바닥에 수북이 쌓였다.

마을과 42번 국도를 연결하는 왕복 4차로 삼화교의 난간이 모두 떨어져 나갔고 쌍용시멘트 공장으로 이어진 원평교는 상판이 내려앉았다. 점포 40여개가 오밀조밀 붙어 있는 삼화시장 내 골목은 사람이 들어갈 틈도 없이 흙 묻은 쓰레기로 가득 찼다.

주민 안봉근씨(60)는 “2년 전 산불에 탄 나무들을 베고 나서 치우지 않아 이번 비에 떠내려와 물길을 막으면서 피해가 더 컸다”고 말했다.

동해시는 이번 수해로 사망 7명, 실종 3명의 인명 피해가 났고 3833가구, 1만15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양양▼태풍 루사는 마을의 지형까지 바꿔 놓았다. 누렇게 벼가 익어 가던 논은 강둑이 터지면서 자갈밭으로 변했다. 강물에 실려 내려온 진흙과 자갈이 쌓여 야트막한 야산이 새로 생겨났고 농기구 창고가 있던 자리에는 조립식 주택이 떠내려왔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남대천을 끼고 있는 양양군 서면 용천리는 둑이 터지면서 마을 전체가 물에 잠겨 양양군에서 피해가 가장 큰 지역.

주민 최재호씨(28)의 36평 조립식 주택은 400여m 남쪽으로 떠내려갔다. 최씨는 “3월 2000만원을 빚내 지은 집인데 다섯 달도 살지 못했다. 닭 1000마리, 콤바인, 화물차, 경운기, 과수원까지 모두 쓸려가고 소 4마리만 남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벽과 가재도구가 모두 휩쓸려 가고 기둥과 지붕만 남은 집을 치우던 강정식씨(57)는 “몸만 겨우 빠져 나와 지금 이 옷을 나흘째 입고 있다”고 말했다.

양양군은 지금까지 사망 16명, 실종 7명 등 23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3285동의 주택이 파손돼 전체 군민 3만여명 중 이재민이 9800여명이나 된다. 그러나 통신이 두절된 마을이 많아 피해자와 피해액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비가 그친 지 이틀이 됐지만 서면 수리에서 현북면 어성전리까지 남대천 상류 8개 마을이 다리가 끊어지고 도로가 유실돼 차량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 1200여명의 주민은 전기 공급도 받지 못하고 통신도 두절돼 고립무원의 지경에 방치돼 있다.

▼다른 지역▼삼척군은 인명피해 26명(사망 12명, 실종 14명)에 2853가구, 1만463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마을과 삼척 시내를 연결하는 다리가 끊어져 나흘째 고립된 미로면에는 서울의 유족이 접근하지 못해 이날까지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사망자도 있었다.

고성군은 3일 현재 인명피해 11명(사망 6명, 실종 5명)에 전체 농경지의 대부분인 3350㏊가 침수되거나 유실됐고 가축 2만4827마리가 죽었다. 속초시도 인명피해 11명(사망 6명, 실종 5명)에 건물 310채가 부서졌고 농경지 499㏊가 침수됐다.

정선군은 8명의 인명피해와 함께 2518가구 822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임계면, 북면, 북평면 등 3개면의 7개 마을이 나흘째 고립돼 있다.

양양〓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동해〓민동용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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