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사상으로 미니멀리즘의 한계를 뛰어 넘은 현대미술의 거장 이우환(李禹煥·66) 화백의 철학적 단상을 모은 수필집이다. ‘일본 모노파(物派)’의 창시자이며 ‘그리지 않는 그림’의 철학자라고 불리는 이 화백의 단상들은 그가 끊임없이 사유하고 고민해온 시공간에 대한 미학적 해석이자 예술론이다.
그가 그리지 않고 있는 ‘여백’이야말로 존재론적인 그의 사유체계의 결정이다. 그에게 있어 여백이란 단순한 여백이 아닌 열린 세계, 우주와 교감이 이루어지는 현장이다.
그는 책에서 표현의 원천을 몸에서 찾는다고 밝히고 있다. “자기 신체를 경유하는 제작 이외에는 달리 좋은 방도가 없기 때문”이며 “신체를 통해 무한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로 생각하지만 또한 손으로 그리고, 발로 걸으면서 작품을 빚는다’라는 것이 바로 그의 작품표현 방법이다.
그는 문화라는 카테고리를 일정 범위로 한정시키지 않고 세잔, 마티스, 몬드리안을 비롯해 백남준까지 그의 미학에 영향을 끼쳤거나 인상 깊었던 예술가들에 대해 재해석하고 있다.
그는 세잔에 대해 “세잔의 사과 그림이 눈에 새겨진 뒤에는 부근에 있는 사과가 이상하리만큼 생생하게 보였다”고 한다거나, 마티스에 대해 “마티스에 이르러 풍경화가 소멸되고 모두 다 정물화로 수렴되었다”라거나, 백남준에 대해 “온전한 의미에서 비디오의 창시자인 동시에 비디오의 종말을 고한 자”라고 표현했다. 그만의 독특한 ‘세계 미학사 독해법’들을 엿볼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과 유럽에서 작품활동을 해온 그는 일본문화와 유럽문화를 전체적으로 꿰뚫어보면서 그 한계 극복의 대안을 모색한다. 일본의 다카마쓰 지로 등 현재 활동중인 미술계의 주요 인물은 물론, 바쇼에서 오에 겐자부로에 이르는 문인들까지도 깊이있는 사유로 분석, 확장시키고 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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