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경제이야기]할리우드의 유태인 파워

  • 입력 2002년 9월 13일 16시 57분


▼거대 자본 무기로 ‘親이스라엘’ 영화 양산 ▼

미국 9·11 테러 1주년을 맞으면서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이슬람 세계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슬람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려는 시도도 있긴 했지만 수십년 동안 축적된 반(反)이슬람의 편견은 테러 사태를 보도하는 국내 언론이나 여론의 시각 속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가령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이스라엘’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들이 있다. 강인하고 우수한 민족, 흉포한 아랍인들의 포위망 속에서 꿋꿋이 살아가고 있는 국민들. 반면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아랍인들에 대해 흔히 떠올리는 인상은 그와 정반대의 것들이다. 폐쇄적이고 폭력적인 민족,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코란’을 든 무서운 광신도들….

우리들 머릿속에 진실과는 다른 이런 선악의 이분법이 꽤나 견고하게 자리잡은 데는 할리우드 영화들의 ‘공’도 큰 것 같다.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자본의 배후, 거기엔 바로 막강한 ‘유태인 패밀리’가 있다. 미국 산업계나 정계에서의 ‘유태인 파워’는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이 잘 알려져 있지만 전방위적인 유태 자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은 바로 언론과 영화다. 미국 뉴욕타임스 발행인 아서 셜츠버거, 워싱턴포스트의 고 캐서린 그레이엄 전 명예회장을 비롯해 CBS 타임워너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오너나 최고경영진이 모두 유태인이다.

이런 상황에선 유태-아랍 문제에 관한 한 균형잡힌 시각을 기대하기란 힘든 게 아닐까. 몇 년 전 할리우드의 흥행 마술사 스티븐 스필버그가 종전의 스타일과는 상반된 영화 한 편을 만들어 화제가 된 일이 있다. 바로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독일인 사업가에 관한 이야기인 이 영화는 그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는 등 흥행감독 스필버그의 성가를 드높여주었다.

그런데 ‘인디아나 존스’나 ‘ET’류의 오락 영화 전문으로 알려진 스필버그는 왜 갑자기 그런 ‘진지한’ 영화를 만들었을까. 해답은 스필버그가 유태인이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스필버그뿐만 아니라 유태인 학살은 할리우드에서 많이 다뤄지는 주제 중의 하나다. 그 배경에는 할리우드를 좌지우지하는 유태계 영화자본의 영향력이 숨어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할리우드의 ‘친(親)유태주의’는 그 역사가 깊다. TV ‘주말의 명화’ 타이틀 음악으로 우리들 귀에 익은 영화인 ‘엑소더스’. 모세의 출애굽기에 빗댄 제목(국내에는 ‘영광의 탈출’로 소개된)의 이 영화는 이스라엘 건국 이야기를 영웅설화식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엑소더스’의 이스라엘 건국 이야기는 아랍인들에겐 비극의 서막이었을 뿐이다. 1948년 아랍의 독립을 보장해준다던 서방세계는 팔레스타인의 심장부에 이스라엘이 건국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스라엘은 잃어버렸던 땅을 되찾은 것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아랍인들로선 2000년간 살아온 고향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것이다.

9·11 테러가 오사마 빈 라덴의 소행이 맞다면 그는 왜 테러 목표지로 뉴욕을 택했을까. 일단은 뉴욕이 세계의 경제 중심지라는 이유가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경제 중심지 뉴욕을 움직이는 세력의 중심에는 바로 유태인들이 있다. 미국에서 유태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가 바로 뉴욕이다.

가령 우디 앨런의 영화들은 대개 뉴욕의 유태인 사회를 무대로 삼고 있는데 우디 앨런 자신이 유태인인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범죄와 비행’ 등 그의 작품의 배경이 되고 있는 도시도 주로 뉴욕이다. 친이스라엘 정책을 펴는 미국 정부를 움직이는 유태인들이 가장 많이 사는 ‘유태인의 도시’ 뉴욕이 아랍인들의 공격 목표가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이명재 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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