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맞은 스님들의 표정도 명절날은 그 미소가 정겹고 손길 또한 따스하다. 비록 출가의 삶을 살아가지만 추석같은 명절에는 절 집의 사람들이 가족이며 친지들이다. 명절날 뒷방 노스님을 찾아 인사를 올리고 정담을 나누고 있으면 할아버지같은 푸근한 인정이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명절날은 가족들과 고향 생각이 난다. 고향을 떠나 산 세월도 꽤 오래며 귀향은 이미 낯선 말이 되었고 설렘도 없다. 가족에 대한 감정과 그리움이 메말라 버린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출가한 뒤로 고향은 드나 들 수 없는 통제구역이 되었다.
중국 선종사(禪宗史)의 걸출한 인물이었던 마조도일(馬祖道一)선사가 출가 후 고향을 방문했다고 한다. 고향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고 있는데, 그의 이웃집에 살았던 한 노파가 다가와서는 “나는 대단한 양반이 온 줄 알았는데 청소부 마씨(馬氏)의 아들이 왔구먼”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마조선사의 속성이 마(馬)씨였는데 노파는 용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마조선사는 장난반 감상반으로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지었다.
‘권하노니, 그대의 고향엘 가지마소. 고향에선 누구도 성자일 수 없나니. 개울가의 옛 할머니 아직도 옛 이름을 부르누나.’
큰 인물이 될수록 고향을 찾지 말라는 말이 있다. 시쳇말로 체면이 구겨지지 때문이다. 스님들도 이런 이유 때문에 고향을 찾지 않는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나뿐만 아니라 스님들 대부분은 고향을 향해 발길을 잘 돌리지 않는다.
해인사의 성철 스님도 평생 떠나온 고향을 단 한번도 찾아가지 않았다고 전한다. 아버님이나 어머님이 별세하였을 때도 출상에 참여하지 않고 시자(侍者·모시고 있는 제자)를 대신 보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하긴 기쁨도 슬픔도 놓아버린 가슴에 고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수행의 길에서 만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한낱 인간적인 감상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삶의 방식이 틀리고 인생의 길이 다르다는 것은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 구름처럼 떠도는 사람에게는 머무는 곳이 고향이다. 출가 수행자에게 고향의 진정한 의미는 주어진 곳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곳이다.
해인사 포교국장 budda122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