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30…백일 잔치 (15)

  • 입력 2002년 9월 23일 17시 31분


“고맙습니다”

몸단장을 마친 몇몇 여인네들이 카운터 앞을 지나가고, 들며나듯 다시 몇몇 여인네들이 들어왔다.

“어서 오이소”

대야를 껴안고 막 나간 연희가 하얗게 질려 카운터로 되돌아왔다.

“아이고, 내 고무신이 없다!”

“누가 잘못 바꿔 신고 간 거 아이가?”

“그럴 리 없재, 어제 산 새하얀 고무신이다. 이씨네 가게에서 샀다”

“신발 관리까지는 못 한다”

“작년에도 바구니에다 벗어둔 치마를 도둑맞았다. 10엔이나 주고 산 비단 치마였는데!” “내는 모르는 일이다”

“도둑이야!”

“아이고, 어데다 대고 소리를 지르노!”

카운터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경순과 허리에 손을 얹고 매서운 눈초리로 올려다보는 연희 사이로 희향과 소원이가 허리를 구부리고 지나갔다.

고무신을 신으면서 희향은 고개를 들고 운하 목욕탕 앞 길을 내다보았다. 그 사람과 우철이는 아직 없다, 그 여자도 없다.

“소원아, 아버지하고 오빠 기다렸다 가자”

“아이스 케이크 안 사고?”

“이제 곧 나올 거다”

“아이스 케이크 먹으면서 기다리면 안 되나?”

“안 된다”

둘은 놋대야를 껴안고 용하와 우철이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쓰르람 쓰르람 쓰르람 쓰르람 쓰르라미가 울고 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저 소리는 무슨 벌레 울음 소리?

“소원아, 저 벌레가 뭐꼬?”

“벌레? 귀뚤귀뚤 하고 우는 벌레? 그건 귀뚜라미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참 늦네, 어떻게 된 걸까? 희향은 운하 목욕탕의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나무문 한가운데 뿌연 유리가 끼여 있고, 검정 페인트로 남탕, 여탕이라 쓰여 있다. 남이란 글자는 똑바른데 여란 글자는 앞으로 고꾸라질 듯 기우뚱하고 페인트가 주르륵 흐른 자국이 있다. 귀뚤귀뚤 피를 흘리듯, 귀뚤귀뚤, 눈물을 흘리듯, 귀뚤귀뚤.

“아버지!”

“우철이 아버지, 늦었네예”

“먼저 가지 그랬나”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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