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장비업계는 작년 적자를 냈다. 전망도 불투명하다.
▽삼성만 쳐다보는 구멍가게〓한국의 반도체 장비업계는 천수답(天水畓)을 닮았다. 천수답이 하늘만 쳐다보고 비를 기다리듯 장비업체는 삼성전자가 장비를 사주기만 기다린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설비투자를 늘려도 장비업체의 몫은 매우 작다. 삼성전자의 투자는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전(前)공정에 집중돼 있고 국내 장비업체는 후(後)공정 장비를 생산하는 탓이다. 삼성전자의 장비 중 90% 이상이 외국산이다.
교보증권 김영준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장비 확충에 1조원을 투자할 때 850억원 남짓만 한국 장비업체의 몫”이라고 말했다.
작년 미국의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머티리얼스의 매출액은 68억달러(약 8조2000억원). 반면 한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한국디엔에스는 780억원의 매출액을 올려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작은 규모로는 많은 연구개발비가 드는 전공정 장비를 생산할 수 없다. 국내 업체들이 수익률이 낮은 후공정 장비를 주로 생산하는 것은 영세한 규모 탓이 크다.
에칭 증착 등 전공정 주요 장비를 생산할 때 영업이익률은 20%선. 조립 포장 등 후공정이나 주변장비 분야는 10%를 밑돈다.
▽뭉쳐서 규모를 키워라〓한국 반도체 장비업체의 과제는 △부가가치가 높은 전공정 장비 생산 △삼성전자 등과 공동 개발 △마케팅 및 연구개발 비용 절감 △해외시장 진출 등이다. 개별 업체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대우증권 정창원 연구원은 “업체끼리 합쳐서 덩치를 키우지 않고는 성장할 수 없다”며 “인수합병으로 마케팅이나 연구개발비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2000년 많은 업체들이 전공정 장비 분야에 연구개발비를 투자해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개발한 장비를 팔지 못한다. 삼성전자가 장비교체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며 국산 장비를 사지 않기 때문이다.
김영준 연구원은 “장비업체의 규모가 충분히 커야 신뢰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 회사가 맞물린 여러 공정의 장비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업체마다 한 가지 장비만 생산해서는 영세성과 낮은 수익성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눈 팔지 말라〓반도체 장비는 경기의 기복이 큰 업종이다. 따라서 적지 않은 현금을 보유해야 한다. 잠시 돈이 남아돈다고 다른 곳에 투자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많은 장비업체들이 벤처 붐을 타고 기업 공개로 돈을 챙겼지만 부동산과 인터넷업체 등에 투자해 손해를 봤다.
미래산업 신성이엔지 디아이 케이씨텍 등은 온라인 등에 투자했다가 수십억∼수백억원의 손실을 보았다. 한눈을 판 대가인 셈이다.
이은우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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