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 기흥읍 삼성SDI 중앙연구소 개발1팀의 강석훈(姜錫勳·28) 전임 연구원. 긴장을 넘어 비장한 분위기까지 느끼게 하는 그가 현재 몰두 중인 분야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능동형(AM·Active Matrix) 유기EL(Electro Luminescence)’ 개발.
1983년 수원의 삼성전관(삼성SDI의 전신) 공장 안에 설립된 이 연구소는 올해 5월 기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세계 1위 디스플레이업체인 삼성SDI의 ‘두뇌’로 거듭 태어났다.
1500억원이 투자된 디스플레이 전문 연구소답게 4층 규모의 연구전용 ‘클린 룸’까지 갖추고 있다. 특히 150여명의 개발인력 가운데 ‘능동형 유기EL(전계발광소자)’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30여명은 밤낮 없이 클린 룸에 틀어박혀 연구에 매달려 있다. 연구소는 곧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곳으로 ‘총성 없는 전장’이기에 연구원들은 스스로를 최전방에 배치된 ‘척후병’(斥候兵)으로 부른다.
얼마전 이들은 의외의 전과로 미국 일본 등의 경쟁기업들을 경악케 했다. 지난해 10월 세계 최대 크기인 15.1인치 유기EL 모니터를 개발한 데 이어 올해 초에는 세계 최초로 휴대전화용 1인치급 ‘풀컬러 수동형(PM·Passive Matrix) 유기EL’을 개발한 것. 이 제품은 8월 말부터 부산공장에서 양산되고 있다.
기술기획팀의 배병용(裵秉溶) 차장은 “올해 초 삼성SDI가 유기EL을 연내에 양산한다는 얘기를 들은 일본의 한 경쟁업체 사장이 ‘사실이라면 후지산을 물구나무 서서 올라가겠다’고 공언했다가 양산 발표 이후 축하전화를 했을 정도로 어려운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칼바람 나는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고의 기술력을 확보하는 게 이 연구소의 존재 이유다.
최근에는 유기EL 다음 세대의 디스플레이로 유력한 전계방출소자(FED) 디스플레이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야심이다.
기술기획팀장인 김상욱(金相旭) 상무는 “2, 3년 안에 유기EL은 10인치 이하 제품용으로 상용화될 겁니다. 개발 중인 FED는 탄소나노튜브를 브라운관의 ‘전자총’ 대신 쓰는 제품으로 이르면 2, 3년 안에 바로 ‘여기서’ 개발돼 20∼40인치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초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를 대체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연구소의 또 다른 강점은 현장과의 접목이다.
연구개발 과정을 ‘공장’의 생산방식과 똑같이 운영, 과거 6개월∼1년이던 기술개발 후 양산까지의 기간을 3∼6개월로 줄인 것은 이 연구소만이 자랑하는 최대 경쟁력이다.
1976년 삼성전관에 입사, 흑백 브라운관 시대부터 유기EL 시대까지 개발에 참여해온 배철한(裵哲漢) 부사장이 연구소의 수장이다. 제품개발을 맡은 8명의 팀장이 ‘교주(敎主)’, 팀원은 교도가 돼야 한다는 ‘교주론’이 그의 지론.
“이 시대의 기업연구소는 연구소가 아니라 5∼10년 후의 제품을 생산하는 ‘미래의 공장’이 돼야 한다”는 그의 설명은 세계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장’의 숨가쁨을 느끼게 했다.
◆유기EL 디스플레이=Organic Electro Luminescence Display. 최근 차세대 디스플레이 장치로 떠오르며 일본과 대만의 업체들이 치열한 개발경쟁을 벌이고 있는 제품이다. OLED(Organic Light Emitting Diode)라고도 한다. 유리기판 위에 적 녹 청 3가지 색상의 형광체 유기화합물을 발라 전기신호를 보내면 별도의 조명 없이 자체적으로 발광한다. 브라운관(CRT)을 급속히 따라잡고 있는 TFT-LCD보다 더 얇게 만들 수 있고 훨씬 밝은 데다 전력소모도 적은 것이 특징이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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