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대치동 미도아파트 주민들에게는 이런 고민이 없다. 5개월 전부터 한 달에 한 번씩 ‘뷰티풀 데이’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 날은 아파트 부녀회가 중심이 돼 주부들이 집에서 쓰지 않는 물품들을 가져다 수거함에 모은다. 모인 물건들은 재활용센터인 ‘아름다운 가게’(상임이사 박원순·朴元淳) 창고로 보내져 알뜰시장에서 일반에게 판매되고 그 수익금은 공익과 자선을 위해 기부된다. ‘애물단지’가 ‘보물단지’가 되는 것이다.
이 달의 뷰티풀 데이인 4일 오후에도 미도아파트 경비실 입구마다 어김없이 수거함이 설치됐다. 모두 86곳. 한 달간 집안에 물건들을 모아뒀다가 수거함에 넣는 ‘기부자’들은 모두 익명의 주민들이다.
“이건 아르마니 정장이잖아, 이 코트는 구치네. 이 가죽가방도 쓸 만한데….”
부녀회원 몇 명과 함께 수거함을 둘러보던 최순자(崔順子·57) 부녀회장이 말한다.
역시 강남일까. 수거함에서는 새 옷과 다름없는 아르마니 구치 찰스주르당 등 세계적 명품 브랜드 정장들이 쏟아져 나온다.
박화숙(朴花淑·59) 총무는 “물건들을 내줘서 고맙다고 하면 그 분들이 오히려 고맙다고 해요. 처치 곤란했던 짐들을 기분 좋게 처리했다는 거죠”라고 말했다.
주민 유순열(柳順烈·61)씨는 “그냥 버리면 벌받을 것 같고, 집에 두자니 짐이 되는 물건들이 남의 손에 들어가면 요긴하게 쓰인다니 얼마나 좋으냐”며 “이제는 며느리들도 물건 살 때 훨씬 신중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뷰티풀 데이를 처음 시도한 주민 이혜옥(李惠玉·47)씨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엘리트 여성. 6개월 전 시험삼아 자신의 집이 있는 110동 두 개 라인의 경비실 앞에 포스터를 붙이고 책상 만한 상자를 가져다 놨는데 4일간 박스 9개분이 모였다는 것.
“매킨토시 컴퓨터에 구두와 핸드백이 한 박스씩, 액세서리 보따리에 그릇 책 옷가지 장난감 등 없는 게 없었어요. 뭔가 되겠구나 싶었지요.”
자신감을 얻은 이씨가 동대표와 부녀회를 설득해 뷰티풀 데이를 아파트 전역으로 확대했다.
한 달에 2,3일간 열리는 뷰티풀 데이에 수집되는 물품은 매번 2∼3t 분량. 그간 노트북컴퓨터, 가야금, 30년 된 타자기, 가전제품 등이 답지했다. 5개월간 모인 쓸만한 명품구두만 해도 2000켤레나 된다.
지난달에는 ‘아름다운 가게’에서 이 가운데 일부를 알뜰장터에 내놓아 얻은 수익금 100여만원을 수재의연금으로 냈다.
이씨는 “엄마들 사이에 입 소문이 나면서 이웃 아파트단지에서 물건을 가져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편 이들 기증품을 모아 판매하는 ‘아름다운 가게’ 1호점이 17일 종로구 안국동에 문을 열 예정이다.
서영아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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