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구개방 둘러싼 알력 현실로▼
개혁의 전도사로 활동할 신의주 특별행정구 양빈(楊斌) 행정장관이 중국 당국의 제재를 받고 있다. 중국의 ‘북한 길들이기’가 시작된 것이다. 특구 개발을 둘러싼 중국과 북한간의 알력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특구 발표 당일 “중국 상황에 맞는 길이 다른 나라의 상황에 반드시 맞지는 않다고 믿는다”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논평은 특구의 앞날이 심상치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특구 위치를 둘러싼 북-중간의 이견은 지난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정월 중국을 방문한 김 위원장에게 주룽지(朱鎔基) 총리는 남한과 일본의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신의주보다는 남측에 인접한 개성을 특구로 지정할 것을 권유했다. 중국 동북부 개발을 추진 중인 중국의 입장으로서는 화교와 한국자본이 누수 될 가능성이 큰 신의주는 탐탁지 않은 지역인 것이다. 신의주 코앞인 단둥에 한국기업 전용공단이 들어선다는 최근의 보도는 금번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신의주가 동북 3성과 경쟁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판단은 단숨에 성립된다. 물론 경제문제가 갈등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북한이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중국횡단철도(TCR) 연결을 둘러싸고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도 최근 몇년간 수십만 t의 곡물과 에너지를 지원해온 중국 입장에서는 유쾌하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92년 9월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金日成) 주석에게 중국식 개혁을 권유했다. 당시 김 주석은 각국의 혁명은‘한 가지 처방’만으로 할 수 없다며 개방 권유를 정중히 거절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중국이 자신들의 전매특허인 특구 개혁을 추종하겠다는 북한에 자국의 경제적 이익이 손해볼까 냉담한 반응을 보인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김일성, 마오쩌둥(毛澤東), 저우언라이(周恩來) 등 순치(脣齒)관계로 밀착되었던 양국의 혁명 1세대는 이제 사회주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공산당 영도하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목표와 이데올로기는 동질성이 약화되고 국가이익만 남았다고 평가한다면 양국관계를 지나치게 비하하는 것일까.
이제 김 위원장은 특구를 비롯한 경제개혁을 둘러싸고 대내외적인 도전에 시달리게 되었다. 향후 김 위원장의 행보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될 것이다. 우선 중국의 불편한 심기를 고려해 양빈 장관을 해임하고 신의주 특구는 보름간의 일장춘몽으로 조용히 처리한다. 내부적으로는 특구의 중도하차 원인을 양빈이라는 인물의 도덕성으로 돌리며 ‘개방바람 막기’에 주력한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공고해졌으나 김 위원장의 지도력은 흠집이 났고 향후 개혁은 건너기 어려운 강이 될 것이다. 외부에서도 북한에 대한 불신은 심화되어 국가신인도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다른 대안은 적극적인 개방과 개혁의 가속화를 추진하는 길이다. 양빈 장관의 석방을 위해 중국 지도부와 담판을 시도하며 빠른 시일 내에 남측과 일본자본을 겨냥해 개성과 원산을 특구로 지정한다. 북-미간의 난제 해결을 위해 보다 전향적 자세를 보인다. 개혁추진에 미국의 협조는 중요한 모멘텀이 되기 때문이다. 북-일 수교를 통해 신속하게 개혁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해 경제회복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민들에게 보여 주어 지도력을 과시한다.
▼김정일 위원장 지도력 시험대▼
객관적 입장에서 볼 때 이념보다는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어느 길을 가야 할지 분명하다. 작금의 사태는 국가간 치열한 외자유치 등 국익 앞에서는 수십년간의 동맹도 견제관계로 반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김 위원장이 외부의 도전과 군부 등 보수파의 반발을 무마하고 경제개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과연 ‘통 큰 정치’를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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