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이 발발하기 2주 전쯤인 6월14일 오전 10시. 권영재(權寧載·중장) 국방정보본부장, 김군식(金軍植·소장) 정보사령관, 권영달(權榮達·소장) 군사부장, 정형진(丁亨鎭·준장) 정보융합실장, 그리고 국방정보본부 예하 5679부대의 한철용 소장이 국방부 회의실에 모였다.
13일 북한 경비정 한 척이 서해 연평도 서쪽 22㎞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6㎞가량 남하했다가 돌아간 사건을 비롯해 북한군의 연속적인 NLL 침범사건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13일의 침범은 올 들어 여덟번째였다.
북한통신감청부대인 5679부대의 한 소장은 이 자리에서 “북한경비정의 NLL 침범 당시 상급부대와의 교신내용에 과거에 듣지 못했던 매우 특이한 어휘가 들어 있었다. 북측이 도발행위를 할지 모르니 임무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당시 회의에 참석한 다른 수뇌부는 별다른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게 한 소장의 주장이다.
그리고 6일 뒤인 19일. 국방부 출입기자단이 빈발하는 북한군의 NLL 침범에 대한 배경설명을 요구하자 합동참모본부는 공개 브리핑을 통해 “북한어선에 대한 통제가 잘 되고 있고 북한경비정의 NLL 침범도 단순침범”이라고 발표했다. 합참은 또 “3∼6월이 꽃게잡이철인데도 북한은 99년 연평해전 이후 NLL 인접해역에서의 어선조업을 적극 통제해 남한과의 불필요한 충돌을 최대한 피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됐다”고 밝혔다.
합참의 브리핑을 들은 한 소장은 “수뇌부의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대로 가다간 큰일나겠다’고 걱정했다”고 말했다.
6월 27일 북한경비정이 다시 NLL을 침범했을 때 한 소장은 13일 때와 마찬가지로 ‘결정적 징후’를 포착해 상부에 보고했지만 역시 삭제된 채 예하부대에 전파됐다. 한 소장은 더 이상 ‘어필’하지 않았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우리가 준 첩보로 美는 北도발 판단”▼
서해교전 사흘 뒤인 7월 2일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북한의 선제도발이라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발언한 것도 바로 5679부대가 미국측에 제공한 ‘결정적 첩보’ 때문이었다고 한철용 소장은 주장했다.
당시 럼즈펠드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북측은 한국이 도발했다고 주장하지만 우리는 북한 함정이 남쪽으로 월경해 도발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다”고 발표했다. 럼즈펠드 장관은 당시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보사항’이라며 더 이상의 답변을 하지 않았었다.
럼즈펠드 장관의 발언을 두고 국내외 군사전문가와 언론들은 미 군사정보당국이 교전직전 북측의 기습공격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관련자료를 확보했을 것이라고 추측했었다. 특히 월드컵 기간 중 미국이 한반도 상공에 고정밀카메라를 장착한 KH9, KH11과 같은 첩보위성은 물론 휴전선 상공을 24시간 비행하면서 사진촬영과 통신감청을 하는 U2 정찰기와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를 풀가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전지역인 연평도 해상에 대해서도 정밀감시를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그러나 한 소장의 말에 따르면 당시 미군은 서해교전을 분석할 만한 첩보나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대부분 우리측이 건네준 자료를 토대로 교전 이후 상황을 판단했다는 것이다. 최근 주한미군의 한 고위관계자도 “당시 첨단장비들로 북한첩보수집활동을 했지만 교전을 전후해 북한측의 도발을 감지하거나 증명할 수 있는 자료는 얻지 못했다”고 말해 한 소장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