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특이 징후' 까지 무시됐다니

  • 입력 2002년 10월 7일 06시 45분


국방부 국감에서 ‘김동신(金東信) 전 국방장관이 서해교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첩보 보고를 묵살했다’고 증언했던 한철용(韓哲鏞) 소장이 엊그제 본보에 추가로 밝힌 내용은 훨씬 더 충격적이다. 그는 “북한측 통신내용 중 ‘매우 특이한 징후’가 있었고 1999년 연평해전 이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어휘들이 포함돼 있었는데도 김 전 장관 등 군 수뇌부가 이를 삭제해 예하 부대에 전파토록 했다”고 말해 의혹은 확산되고 있다.

그는 교전 직전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의 높은 도발 가능성에 대한 첩보를 보고했지만 김 전 장관이 이를 묵살하는 바람에 서해교전에 대비할 수 없었다고도 했다. 한 소장은 군 수뇌부의 마음이 ‘딴 곳’에 있어 판단을 잘못했다고 했는데 그 ‘딴 곳’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다. 그의 이런 주장들이 사실이라면 이 정권은 서해교전에서 사상한 우리 장병들의 ‘예고된 희생’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오늘부터 시작되는 국방부 조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는지 여부를 예의 주시할 것이다. 이번 조사의 핵심은 ‘현역 장성이 국회에서 군사기밀을 내보이며 폭로성 발언을 한 것’이 아니라 ‘국방장관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알리는 보고를 묵살했느냐 하는 것’이다.

첩보보고 내용과 이에 대한 국방장관의 지시사항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으며 정보판단이 잘못됐다면 누구의 책임인지를 밝히는 것이 조사의 핵심이다. 만에 하나 이번 조사가 김 전 장관에 대한 의혹 벗겨주기 차원에서 진행된다면 이는 서해교전에서 스러진 호국 영령들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군과 정치권 일각에서 한 소장의 폭로과정만 문제삼는 것도 본말이 전도된 개탄스러운 일이다. 국방부가 그에 대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경위를 조사하겠다고 하는 것도 이번 일의 본질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국방부는 치우침 없는 수사를 통해 서해교전에서 우리 군이 어처구니없이 당한 직간접적인 원인이 어디 있는지 그 근본을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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