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서너번 이 말을 합니다.
그러면 저도 “고마워요” 합니다.
그리고는 둘이 웃습니다.
예전에 우리 부부가 젊었을 때는
남편이 “사랑해” 하면
“저도요” 했었습니다.
어느새 말이 바뀌었습니다.
얼굴을 마주보며 살다보니
많이 비슷해지고 닮아가고 있습니다.’
50대 여성이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입니다.
그 여성의 글에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나이들어 가는 부부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얼마전 남편이 승용차로 회사에 태워주던 날, “생큐, 허스번드(고마워요, 남편)”라고 경쾌한 스타카토 발음으로 고마움을 표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서운한 일만큼 소소한 고마운 일이 의외로 많을 듯합니다.
그 고마움을 찾아서 인터넷에 글을 올린 50대 여성과 그녀의 남편을 5일 서울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났습니다.
“작은딸이 아들을 낳았을 때, 사위들이 안부 전화를 걸어올 때, 큰딸이 직장생활을 열심히 할 때마다 남편은 틈틈이 제게 고맙다고 해요. 아무래도 자식들이 잘 됐을 때 부부가 서로 고마워하는 것 같아요.” (아내)
“나 하나 믿고 시집와서 알뜰살뜰 살림하고, 애들 잘 키우고, 든든하게 내 옆에 있어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젊었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없는 살림에 아내가 갈비요리와 닭튀김을 만들어 이웃에게 후하게 신혼턱을 내다 보니 봉급 날짜를 이틀 남기고 수중에 돈이 몽땅 떨어진 거예요. 우리 부부는 이틀 동안 매끼니를 라면으로 때웠습니다. 봉급을 받은 날 저녁 동네에서 제일 번화한 곳에 나가 외식을 한 뒤 손을 꼭 붙잡고 집으로 돌아와 맥주로 ‘라면 끝’ 기념축하를 했죠. 지금도 라면을 먹을 때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금성’이란 노란색 글씨 위에 별 다섯개가 왕관에 달려 있는 모양의 30년 묵은 믹서기는 작은딸이 태어나기 전부터 집에 있었던 겁니다. 아내는 우리 부부의 추억으로 여전히 주방에 놓아두고 있습니다.” (남편)
남편의 말은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을 떠올리게 합니다. 외람된 질문인지 알면서도 남편에게 “아내의 폐경을 어떻게 위로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뜻밖의 응답이 되돌아왔습니다.
“아 참, 그 대목도 아내에게 고마운 점이에요. 아내는 여전히 생리를 해요.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아직 폐경을 맞지 않고 건강한 아내가 고마울 따름이에요.”
지난달 만난 60대 부부는 말했습니다.
“요즘 부부가 쉽게 헤어지는 것은 서로 고마워할 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아닐까요. 상대방 탓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게 부부 관계죠.”
60대 초반인 남편은 사업을 하던 젊은 시절 밤늦은 술자리와 여자문제로 늘 아내의 속을 썩였다고 했습니다. 2년 전 은퇴한 후 고혈압과 당뇨 등을 앓고 있는 그는 최근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털어놓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아이들 교육하고 시집, 장가 보낸 것 모두 아내가 한 일이에요. 남자들은 사실 바깥일 하느라 집안일은 잘 몰라요. 나이들고 병들어서야 아내에게 고마워하는 게 꼭 부모를 여의고 후회하는 것처럼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이런 게 부부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요즘 젊은 부부들은 배우자에 대해 어떤 점을 고마워할까 궁금했습니다. 결혼 4년째로 지난해 아기를 낳고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30대 전문직 여성과 8일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맞벌이가 일반화되다 보니 육아문제로 갈등을 빚는 부부가 많아요. 대부분 남자들은 남녀가 똑같이 바깥일을 해도 아이 키우는 일은 결국 여자 일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안 그래요. 새벽에 아기가 울면 제가 깨지 않도록 남편이 아기를 달래요. 제가 출근해 일할 동안 아기를 데려다가 돌봐주는 시어머니와 남편 모두 제 사회생활을 적극 이해하고 도와주니 고마워요.”
-그럼 남편은 아내의 어떤 점을 고마워하나요. (기자)
“제가 임신 중이던 지난해 안정된 직장을 다니던 남편이 사업을 하겠다고 힘들게 말을 꺼냈을 때, 뜯어 말리지 않은 것을 남편은 두고두고 고마워해요. 누구든 자기 하고 싶은 게 있을 텐데 처자식 때문에 못하면 처량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서로를 커다란 틀 안에서 믿고 도와주는 것, 그것이 제일 고마운 일 같아요.”
부부가 하루에 세번 서로에게 “생큐, 와이프!”, “생큐, 허스번드!”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양쪽 어깨를 누르는 인생의 무게가 사뿐해지고, 두 눈은 맑아질 것 같습니다.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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