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부형권/´자기 모순´ 에 빠진 金고문

  • 입력 2002년 10월 11일 18시 34분


올해 3월 24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강원지역 대회가 진행되던 도중 당시 선거관리위 위원장이던 김영배(金令培) 고문은 인사말을 하다가 단상에 앉아 있던 후보 4명을 일으켜 세웠다.

그가 “경선 결과에 승복해야 한다. 승복할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말하자 노무현(盧武鉉) 이인제(李仁濟) 정동영(鄭東泳) 김중권(金重權) 후보는 어색한 표정으로 천천히 일어섰다. 선거인단 석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고, 당 관계자들은 ‘김영배의 힘’이라고 표현했다.

이틀 뒤인 26일 그는 ‘음모론’을 제기하며 선거운동을 중단한 이인제 후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선거 판세가 본인에게 다소 불리하더라도 국민참여경선제의 성공을 위해 끝까지 경선에 참여해줬으면 좋겠다”며 “그것만이 당은 물론 본인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호소했다.

이랬던 김 고문이 최근 자신이 선거 관리를 맡았던 국민 참여 경선을 ‘사기’라고 폄훼하는 발언을 해 반발을 산 끝에 결국 금명간 ‘후보단일화 추진위원회’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그의 문제 발언은 8일 노 후보를 비판하는 와중에 나왔다.

“노 후보가 자신을 ‘국민후보’라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민주당 경선은 ‘국민경선’이 아니라 ‘국민참여경선’이었다.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는가. 후보들이 동원한 거지. 그게 사기지.”

즉, 노 후보가 ‘국민이 뽑은 후보’라는 이유로 자신의 정통성을 내세우지만 경선의 실상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다. 자신이 그토록 강조했던 국민참여경선의 의의를 스스로 부정한 셈이다.

그는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 총재권한 대행시절 99년7월 당시 총리이던 김종필(金鍾泌)자민련 총재의 국회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가 낙마(落馬)할 만큼 ‘실언(失言)’이 잦은 정치인으로 유명하다.

물론 이번 발언은 그의 종전 실언과는 종류가 다르다. 국민참여경선의 정당성을 송두리째 부정했다는 점도 그렇지만 그가 ‘사기’란 주장을 할 만큼 각 후보진영의 동원경쟁과 ‘청와대 개입설’ 등 경선자체의 공정성을 의심할 만한 요소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으로 자신들이 뽑은 후보를 흔들다 못해 경선자체를 부정하는 그의 발언은 지리멸렬의 상태를 면치 못하는 민주당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듯해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부형권기자 정치부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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