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참된 의미를 찾으며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의지를 좌절시키는 비합리성을 카뮈는 부조리라고 불렀다. 요즘처럼 성과주의 급료체계가 채택되면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상대주의 ABC평가에 의해) 누군가는 C를 받아 불이익을 당해야 한다면 이것도 부조리의 하나다. 부조리는 자연계에도 많다. 과일나무가 여름 동안 열심히 노력하여 열매를 맺으면 자연은 중력을 작용하여 나무를 괴롭힌다. 노력을 많이 한, 즉 열매를 많이 맺은 나무는 빈약한 나무에 비해 작은 바람에도 가지가 부러진다. 부조리는 이렇게 자연과 사회 속에 즐비하다. 부조리가 문제되는 것은 그것이 부정부패나 불법행위와 다르기 때문에 법에 호소할 수도 없다는데 있다.
카뮈는 “인간이 자살한다는 것은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부조리에 시달리는 인간은 자살을 택하든지 아니면 신화 속의 시시포스처럼 반항과 열정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산꼭대기까지 밀어 올린 바위가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자기에게 주어진 바위를 계속 굴려 올리는 것이 시시포스의 열정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지성인은 패배 속에서 승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지성인의 패배, 곧 ‘지성의 희생’은 신이 가장 기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생명이란 단어는 ‘생(生)은 명령(命令)이다(生은 命也)’에서 왔다고 한다. 생명을 부여받은 존재는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생존경쟁이 아무리 어렵고 부조리가 아무리 난무해도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명이다.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 즉 생존방식의 선택만이 문제될 뿐이다.
#5억3000만년 역사의 암시
자연과학의 진리는 실험을 통하여 진위를 가릴 수 있다. 불행히도 인문사회의 문제는 실험이 어렵다. 그러나 장구한 역사 속에 축적된 데이터 및 사실이 인문사회의 진리탐구에 실험실 역할을 해준다. ‘무한경쟁 속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도 역사 속에서 탐구하자. 생존경쟁의 역사는 5억3000만년 전 바다에서 시작되었다. 캄브리아기라고 불리는 이 때부터 어류들 사이에 약육강식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각자 어류는 생존전략을 세우며 그에 맞는 신체구조를 진화시키기 시작했다. 예컨대 (자기를 잡아먹을) 강자나 (자기 먹이가 될) 약자를 신속히 발견하기 위한 정보전략을 선택한 어류는 많은 눈을 보유하는 쪽으로 신체구조를 진화시켰다. 5개의 눈을 보유한 ‘오파비니아’ 화석이 대표적인 예이다.
어류의 이러한 진화노력은 오늘날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하는 노력의 과정, ‘환경적응⇒전략수립⇒구조조정’과 본질적으로 같다. 1802년 화약제조로 출발한 듀폰사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듀폰은 전쟁 발발로 화약주문이 폭주하면 생산설비를 대폭 확장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전쟁이 끝나면 과잉설비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래서 듀폰은 페인트, 셀룰로이드, 인조가죽 등 화약 이외의 다른 분야로도 진출하려는 다각화전략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전략에 따라 생산되는 새 품목들은 계속 적자를 발생시켰다. 페인트 사업의 경우 듀폰이 적자를 내는 동안에도 경쟁업체들은 이익을 내고 있어서 듀폰은 당혹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인구명에 나선 듀퐁사는 적자발생의 원인이 판매부진이 아니라 조직구조에 있음을 밝혀냈다.
화약 단일품목만을 위해 설계되었던 조직구조를 가지고 다각화된 품목의 생산·구매·판매·연구개발 등을 계획, 통합 평가하자니 관리상 많은 문제점이 나타난 것이다. 결국 듀폰은 제품 라인별 사업부제를 채택하면서 각 사업부가 제품라인의 특성에 맞게 모든 직능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본사는 투자수익률(ROI)법을 개발, 사업부의 업적평가에 임하기로 했다. 수억 년 역사를 가지는 생존지혜, 즉 ‘환경적응⇒전략수립⇒구조조정’의 우등생 듀폰이 금년에 200주년을 맞는 것은 이렇게 남다른 노력의 대가(代價)이지, 우연이 아니다.
윤석철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yoonsc@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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