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부상 이희완 중위 "내년엔 다시 고속정 타렵니다"

  • 입력 2002년 10월 13일 17시 59분


서해교전에서 적탄에 오른쪽 다리를 잃고 현재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 중인 이희완 중위가 교전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윤상호기자
서해교전에서 적탄에 오른쪽 다리를 잃고 현재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 중인 이희완 중위가 교전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윤상호기자
6월 서해교전 때 부상했던 해군 이희완(李凞玩·26) 중위는 내년 초 재활치료를 마치고 퇴원한 뒤 다시 해군에 복귀할 계획이다. 올해부터 임무수행 중 장애가 발생할 경우 계속 군에서 복무할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비록 ‘의족’에 의지해야 하겠지만 가능하면 고속정을 다시 타고 싶다는 게 그의 꿈이다. 지금 자신이 서 있어야 할 자리는 그 곳이라는 신념 때문이다.

이젠 치료진에게 먼저 농담을 건넬 만큼 안정을 되찾았지만 그는 친형제 같이 지내던 6명의 전우를 비명에 보낸 충격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다리절단 수술 후 입원 중일 때 매일밤 교전의 악몽을 꾸었어요. 정장님과 부하들의 이름을 부르다 깨기도 했고요.” 그러나 요즘은 꿈에서 활짝 웃는 전우들을 만나 얘기꽃을 피운다. 꿈에서 깨면 그들이 숨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안타깝지만….

이 중위에게 당시의 상황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6월29일 오전 6시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그를 포함해 28명의 장병들을 태운 해군고속정 357호는 새벽바다를 갈랐다. 푸른 바다 위로 고속정이 내뱉는 하얀 물살을 바라보던 그의 가슴은 설[4]다. 이틀 뒤면 3주간의 해양근무를 마치고 보름 동안의 육지생활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후 3시간 뒤 북 경비정 2척이 잇달아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남하 중이라는 상황보고가 날아들었다. 이어 북 경비정 한 척이 육안으로 들어왔고 전 장병들은 즉각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40㎜포와 기관총을 적선에 겨냥한 지 20여분. 팽팽한 긴장 속에 적선을 망원경으로 감시하던 그의 눈에 번쩍하는 섬광이 비쳤다. 순간 고막을 찢는 폭음과 사방에서 동료들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적선의 기습공격으로 평온했던 바다는 순식간에 포탄과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으로 돌변했다.

당시 그는 적탄에 맞아 오른쪽 다리를 크게 다쳐 쓰러졌지만 먼저 숨을 거둔 정장을 대신해 부하들을 지휘해야만 했다. “쏴라.” 부상한 부하들도 사력을 다해 응사했다. 그러나 얼마 후 출혈이 심해진 그는 “기수를 남쪽으로 돌리라”는 말만 남긴 뒤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에게는 앞으로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얼마 전 병 문안을 온 한 친구는 “이젠 장애인인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더 이상 예전의 내 모습이 아니라는 걸 절감한 순간 기분이 묘했습니다. 한동안 자포자기도 했고요.”

그러나 허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먼저 간 동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경북 김천 출신인 그는 삼형제 중 막내로 초등학교 때부터 군인의 길을 꿈꿨다. 자신이 선택한 길인 만큼 죽는 날까지 군인으로 남고 싶다는 결심을 다시 굳혔던 것이다.

윤상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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